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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 졸이 왜 무서운 줄 아나? 전진만 할 뿐 후퇴하지 않기 때문”

중앙일보 2011.01.06 01:14 종합 16면 지면보기



드라마 ‘대물’ 주인공 검사 자주 거론하는 김준규 검찰총장





김준규 검찰총장은 요즘 가까운 지인들과 만나면 최근 막을 내린 TV 드라마 ‘대물’얘기를 꺼내곤 한다. 그가 ‘대물’을 거론하는 이유는 주인공인 ‘하도야 검사’(권상우 분)의 활약 때문이다. 김 총장은 “하도야의 대사 중 ‘장기판의 졸(卒)이 왜 무서운 줄 아느냐’는 대목이 특히 가슴에 다가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하도야는 거물 정치인인 ‘조배호’(박근형 분)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자 “졸은 앞으로 전진만 할 뿐 후퇴할 수 없다. 한 걸음씩 움직여 결국 왕도 잡아먹는다. 마음껏 해보시라”며 평검사의 기개를 보였다는 것이다.



 김 총장의 ‘후퇴하지 않는 검사’론은 새해 들어 그의 공개 발언에서 확인되고 있다. 검찰 시무식이 예정됐던 지난 3일 김 총장은 시무식 대신 화상회의를 열었다. 전국 47개 지검·지청에 연결된 화상시스템을 통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였다. 그는 이날 직접 읽은 신년사 말미에 “올해는 검찰의 기운이 비상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솟구쳐 오르자”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내 임기가 8개월이 남은 게 아니다. 8개월짜리 임기를 새로 받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수사에 매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올 8월 총장 임기(2년) 만료를 앞두고 ‘레임덕(권력누수)’에 접어들 것이란 인식을 뒤집은 것이다. 판에 박힌 신년사 대신 자신만의 어법으로 검찰의 전열 정비와 함께 총장의 강한 리더십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총장이 새로운 각오를 밝힌 것은 검찰에 치욕적인 사건이 많았던 2010년의 그림자 때문이다. 지난해 검찰은 ‘스폰서 검사’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받은 데 이어 ‘그랜저 검사’ 사건까지 터져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뇌물죄로 기소한 한명숙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고, 한화·태광그룹 등 대기업 수사에서도 조사 방식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지난 연말에는 신한은행 임원 수사를 놓고 수뇌부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사이에 갈등설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 총장이 특수수사 경험이 많지 않은 탓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김 총장은 남은 8개월에 검찰과 자신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는 검찰의 명예회복이 국민의 박수를 받는 강력한 수사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신년사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검찰권 행사는 헛수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대검 간부회의 등에서 청목회 수사를 성공 사례로 꼽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정치권 수사가 본격화될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총장의 출사표가 성공할 수 있을지를 놓고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먼저 그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그간 총장 임기 만료 2~3개월 전부터 차기 총장 하마평이 오르내리면서 총장의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상명 전 총장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권한을 행사한 예외적 사례인데, BBK 사건 등 중요 사건이 쉴 새 없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주요 보직에 측근을 앉혔던 역대 총장들과 달리 김 총장에게 ‘자기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취임 후 인사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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