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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임금의 상징인 전패를 훔쳐 토막 낸 현원일

중앙일보 2011.01.06 00:58 종합 33면 지면보기


상주의 객사인 상산관(商山館)의 모습. 객사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를 봉안하는 신성한 곳으로 조선시대 각 고을 동헌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경북 상주시 만산동에 있다.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

1851년(철종 2) 11월 29일 밤, 충청도 황간현에 살던 양인 현원일(玄元日·35세)은 잠긴 객사(客舍)의 문을 뜯고 안으로 침입했다. 그는 객사 대청에 모셔져 있던 전패(殿牌)를 훔쳐 집으로 돌아온다. 현원일의 처 손금례(孫今禮·28세)는 남편에게 들고 온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현원일이 객사에서 전패를 가져 왔다고 하자 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어 현원일이 전패를 아궁이에 넣어 소각하려 하자 처는 “중대한 물건을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필사적으로 말린다. 처의 만류에 밀린 현원일은 전패를 갖고 나가 세 토막을 낸 뒤 집 앞을 흐르는 석천(石川)이라는 개울에 집어 던진다.

 이튿날 객사에서 전패가 사라진 사실이 드러나자 황간현은 발칵 뒤집힌다. 사람들을 풀어 고을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진다. 이윽고 수색자들은 얼어버린 석천에서 떠내려가다 만 전패 조각들을 발견한다. 곧 수사가 시작되었고, 전패가 발견된 근처에서 살던 현원일은 곧바로 체포된다. 전패란 도대체 무엇이고 현원일은 왜 그것을 훔쳤을까.

 전패는 ‘전(殿)’자가 쓰여진 목패(木牌)로서 임금의 상징물이다. 전국 각 고을의 수령들은 정월 초하루나 임금의 생일·기일 등에 객사에 모셔진 전패를 향해 네 번 절한다. 전패를 건드리거나 훼손한 사람은 대역부도죄로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전패를 분실하거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수령들 또한 엄한 처벌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전패를 훔치거나 훼손했던 사건, 이른바 전패 작변(作變)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 주체는 대개 고을 수령에게 유감이나 원한을 품고 있는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전패를 건드려 수령이 파직되거나 처벌받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복수하려 했다. 현원일도 수령에게 유감을 품고 있었다. 그는 상주에 사는 황생원(黃生員)이란 양반과 벌목 문제로 시비가 붙어 송사를 벌인 바 있다. 그런데 관에서는 황생원을 편들고 ‘상놈이 양반에게 대들었다’며 현원일을 투옥시켜 버렸다. 그는 곤장을 맞고 비싼 보석금까지 치른 뒤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석방된 뒤 생활이 몹시 어려워지고 울분을 참을 수 없게 되자 전패를 훔쳤던 것이다.

 현원일이 만일 전패를 아예 태워버렸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그렇게 쉽게 체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처는 ‘나라님’을 상징하는 전패를 태우려 했던 현원일을 결사적으로 막아섰다. 현원일 자신도 전패를 끝내 없애지는 못했다. ‘현원일 사건’은 권력에 저항하려 시도했지만 ‘권력의 상징’ 앞에서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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