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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강만수 장관이 남긴 것

중앙일보 2011.01.06 00:53 종합 33면 지면보기






고현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다가 오랫동안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소신껏 일한 죄(?)로 엄청난 고초를 겪은 것이다. 그 후 공직사회에는 책임이 따르는 민감한 일을 꺼리는 보신 풍조가 만연했다.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다. 최근 현대건설·우리금융지주 매각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금융당국의 난맥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변 국장 못지않게 공직사회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다. 강 장관은 일단 방향이 서면 비난을 겁내지 않고 밀어붙이는 소신파다. 뚝심·고집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색깔이 분명하니 따르는 사람이 많지만, 적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08년 3월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안팎에서 견제에 시달렸다. 운도 없었다. 개혁의 호기인 정권 초기를 광우병 파동으로 날려보냈다. 그해 하반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결국 1년이 채 안 돼 경제수장에서 물러났다.



 공직사회의 후배들은 이를 유심히 지켜보며 깨달은 게 있었다. 강 장관처럼 목소리를 분명히 내면서 소신껏 일하면 욕만 먹고, 자리를 오래 지키기 힘들다는 것을. 그 뒤 공직사회에 소신과 도전보다는 화합과 소통이 더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다툼이 적어졌지만, 색깔은 모호해졌다. ‘안 되는 일’이 줄었지만, ‘되는 일’도 함께 줄었다. 변양호 신드롬과는 또 다른 ‘강만수 신드롬’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강 장관은 감세와 규제 완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근간으로 하는 ‘MB노믹스’의 설계자다. 그가 경제수장에서 물러나면서 MB노믹스도 추진동력을 잃었다. 지난해 가을 국회에서 감세 논쟁이 한창이었다. 정부는 ‘부자 감세’라는 야권의 충동적이고, 이분법적인 용어를 바로잡지 못한 채 수세에 몰렸다. 정부 안에 총대 메고 감세의 필요성을 대변할 만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 기자들은 다시 강 장관을 찾아 감세를 왜 해야 하는지를 물어봐야 했다. 그는 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곤혹스러워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물론 지난 2년여는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게 정부의 최우선 과제였다. MB노믹스를 돌아볼 만한 여력이 없었다. 위기국면이었던 만큼, 일을 벌이는 소신보다는 일을 수습하는 화합이 절실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 이 과정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라는 전리품도 챙겼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2008년 금융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와 다르다.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고, 금융위기는 서방국가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금융위기의 당사자가 아닌 만큼 상대적으로 회복이 빠른 건 어찌 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G20 정상회의 개최도 그렇다. 대내외에 우리나라의 위상과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부신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회의 개최는 회의 개최일 뿐이다.



 국민이 지난 대선에서 이 정부를 선택했을 때는 더 큰 기대가 있었다. 공기업을 확 뜯어고쳐 세금 새는 것을 막아달라든지, 의료·교육 등 서비스업 규제를 확 풀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는 그런 것이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올해는 광우병 파동과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다시 출발선에 서는 해이기 때문이다. 총선·대선이 있는 내년에는 개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집권 4년차인 올해가 MB노믹스의 초심으로 돌아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첫해이자 마지막 해인 셈이다.



 마침 12·31 개각으로 경제팀의 색깔이 한결 강해졌다. 소신으로 무장하고,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 대거 포진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으로 강만수 재경원 차관과 함께 나라 금고를 지키려 마지막까지 애쓴 강골이다. 김 위원장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세제를 주도했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강 장관은 이 정부 들어 그를 줄기차게 천거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강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차관으로 환율 정책을 주도했던 ‘환율 매파’다. 돌아온 강만수 사단이 강만수 신드롬을 이겨내고, MB노믹스를 소신껏 추진해 주기를 당부한다. 뭐니 뭐니 해도 MB 정부에선 MB노믹스를 제대로 구현해야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법이다.



고현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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