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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3D 맞춤 군복

중앙일보 2011.01.06 00:43 종합 35면 지면보기








영국 왕실근위대 복장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군복이라고 한다. 장미전쟁을 끝내고 절대왕정을 연 헨리 7세가 1485년 만들었다. 지금은 의전용으로만 명맥을 유지한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妃)의 결혼식이 대표적이다. 화려하기로는 푸른색과 주황색 줄무늬의 로마 교황청 수비대 군복이 으뜸이다. 이탈리아의 거장(巨匠)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복의 역사는 그리스·로마와 춘추전국시대로 올라간다. 집단 전투에선 무엇보다 호신용 갑주(甲胄)를 기본으로 피아(彼我)의 구별이 필요했다. 화려한 붉은 망토나 투구의 깃털장식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고, 내부적으로 계급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화려한 군복은 나폴레옹 시대로 마감한다. 당시 군복에 주석 단추를 달았는데, 주석은 섭씨 13.2도 아래에선 불안정해진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서는 분말이 돼 부스러진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공략이 실패한 이유가 단추가 부스러져 옷깃을 여미지 못한 병사들이 동상에 걸렸기 때문이란 그럴싸한 분석도 있다.



 총이 등장하면서 군복은 과시형에서 은폐형으로 바뀐다. 인도의 용병대가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 영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흰색 군복은 저격병에게 좋은 표적이었다. 견디다 못한 영국군은 흙먼지를 군복에 비벼 위장했는데, 이것이 ‘카키색’의 연원이다. 카키는 힌두어로 흙먼지를 뜻한다.



 실용성이 중요하지만, 군복은 늘 패션도 추구했다. 나치 친위대 복장은 프로이센의 전통 군복에 디자이너 휴고 보스가 선(線)을 살렸다고 한다. 참호에서 비를 피하던 영국군 외투는 ‘트렌치 코트’ 유행을 만들었다. 이를 디자인한 버버리는 아예 보통명사가 됐다. ‘밀리터리 룩’은 요즘 여성에게 더 인기다.



 우리의 군복도 카키에서 얼룩무늬로, 화강암질로 진화했다. 하반기부터는 ‘3D 아바타’를 이용해 개인별 맞춤 군복을 지급한다고 한다. 과거 군복에 몸을 맞추던 시절, 차림새만으로 계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등병은 새 옷이지만 헐렁하며 볼품이 없다. 일병은 나름대로 각(角)을 잡아도 노련미가 없다. 상병쯤 돼야 맞춤복처럼 척 달라붙고, 병장이면 다림질로 바랜 카키색에 관록이 묻어난다. “군복과 군화만 맞아도 군에 말뚝을 박겠다”는 푸념이 괜한 투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특허 디자인에 맞춤 군복이란다. 나폴레옹 시대 화려한 군복에 반한 청년들이 앞다퉈 입대했다는데, 새로운 패션 군복이 병역기피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박종권 논설위원·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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