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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버려진 가전제품 그 덕에 행복한 미래 꿈 꿔”

중앙일보 2011.01.06 00:24 종합 25면 지면보기
#1. 2009년 2월 서울역 지하도. 김형욱(37·가명)씨는 박스와 신문을 겹쳐 깔고 잠을 청했다. 엄동설한은 지났지만 시멘트 바닥의 한기는 뼛속을 파고들었다. 20대 초반부터 공사장 막일을 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갖고 있던 돈마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활이었다. 여비를 마련해 대전·대구 등 지방의 공사장을 돌았지만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안정된 직장과 가정. 노숙자가 된 김씨는 이 두 가지를 포기했다. 하루 끼니와 잠자리가 더 급했기 때문이다.


노숙인 출신 김형욱씨의 인생 변신

 #2. 2011년 1월 5일. 김형욱씨는 갓 태어난 아들과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월 10만원짜리 사글세지만 강남구 삼성동에 단칸방도 마련했다. 매달 꼬박꼬박 받는 월급 130만원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세 가족엔 소중하기만 한 돈이다. 김씨는 조금씩 저축도 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제대로 결혼식을 못 치른 부인에게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혀줄 계획이다.









5일 서울 성동구 송정동 SR센터에서 노숙인 출신 직원 김형욱씨가 폐가전제품을 분해한 뒤 재활용할 부품을 모으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씨가 근무하는 곳은 성동구 송정동 SR센터(Seoul Resource Center·서울자원센터). 일반인들이 버린 휴대전화와 가전제품을 모아다가 분해해 금·은 같은 귀금속과 구리·코발트 등 재활용 자원을 분리해 내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서울시가 2009년 12월 설립해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께 대한성공회가 운영하는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터’에 들렀다가 SR센터에 취업할 것을 권유받았다. 노숙생활을 한 지 1년7개월 만이었다. 김씨는 “첫 출근을 하던 지난해 9월 1일은 복권이라도 맞은 것처럼 기뻤다”며 “4대 보험에 퇴직금까지 있는 직장을 갖게 된 게 꿈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막일을 오래한 김씨에게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의 분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폐휴대전화나 폐가전제품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집진기로 먼지를 제거한 뒤 망치와 드라이버를 이용해 부품을 하나씩 떼어낸다. 귀금속이나 구리가 들어 있는 부품은 제련소로 보낼 바구니에 담고, 플라스틱은 따로 모은다. 오전 9시에 출근해 하루 70~80개의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을 분해하다 보면 금세 오후 6시 퇴근시간이 된다. 김씨는 “남들에겐 버려진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이지만 그 덕에 난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며 “회사가 잘 운영돼 오랫동안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R센터에는 현재 61명이 근무한다. 김씨와 같은 노숙인 출신부터 고령자·여성가장 등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분해·처리하는 폐휴대전화·폐가전제품은 한 달 평균 300t. 휴대전화 한 대를 분해하면 평균 2500원, PC 1대에서는 평균 1만6000원 상당의 자원을 건질 수 있다. 이 센터는 지난해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순수익 2억 5000만원을 전액 저소득층 자활지원사업인 ‘희망플러스통장’과 ‘꿈나래통장’의 지원금으로 내놨다.



 이형출 SR센터 기획실장은 “센터 운영이 활성화되면서 자원 재활용을 통한 환경 보호,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 나눔 실천의 1석3조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현재 35%에 불과한 폐휴대전화·폐가전제품 수거율이 높아지면 더 많은 취약계층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글=박태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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