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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는 조연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데 …

중앙일보 2011.01.06 00:20 종합 26면 지면보기



‘문예중앙’시선(詩選) 속간 첫 번째는 조연호 『농경시』
해설 쓴 허윤진 편집위원 “독특한 리듬·음조에 쾌감”



시인 조연호(오른쪽)씨가 시집 『농경시』(문예중앙)를 냈다. 문체 빼어난 평론가 허윤진씨가 해설을 썼다. 조씨와 허씨는 시집이 “뜻을 속속들이 모르더라도 말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김태성 기자]



요령부득의 난수표 같다. 시집 제목은 자못 서정적이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런 단언에 시인이 실망하더라도 할 수 없다). ‘한낮은 한낮을 색적(索敵·적을 찾아냄)하고 말았다. 이 식(蝕)을 간직할 것이다.’ 시집 첫머리, ‘시인의 말’이다. 무슨 뜻일까. 건너 뛴다.



 시집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겨울, 꿈에게 다짐한다. 밤의 모호한 흔들림에 맺힌 핏방울처럼, 떠오르는 별로부터도 검게 윤이 나도록 너희는 배회로 허공을 치장하고 있었다. 내 작은 껍질을 자르기 위해 어버이는…’.



 조연호(42) 시인의 새 시집 얘기다. 제목은 『농경시』. 2년간의 공백을 깨고 지난해 가을 속간호를 낸 계간 문예중앙의 시선(詩選) 1번으로 출간됐다.



 2000년대 중반 문예중앙이 소위 ‘미래파 논쟁’을 제기하며 ‘물증’으로 선보였던 시집을 기억하는 이라면 조씨 시집에 대한 충격이 덜할 수도 있겠다. 당시 대표적인 문제작이었던 황병승의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두고 ‘획기적인 형식 실험’ ‘실속 없는 언어 유희’라는 주장이 맞섰다. 조씨의 새 시집을 두고 문예중앙 편집진은 전열을 재정비한 듯하다. 시집 뒷장 추천사에서 문예중앙 편집위원인 평론가 권혁웅은 “한국의 현대시는 조연호 이전과 이후로, 불가역적으로 나뉘었다”고 평한다. 극찬이다. 시집 해설 역시 문예중앙 편집위원인 평론가 허윤진(31)씨가 썼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나서 자기네 선수를 응원하는 모양새다.



 시집은 굳이 분류하자면 서사시다. 헌데 이렇다 할 사건을 찾기가 어렵다. 문장은 통상적인 문법규칙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추상명사를 생명체처럼 대한다. ‘문비(問備·죄가 있는 관원을 조사하는 일)’ 같은 난해한 한자어도 많이 나온다. 허씨에 따르면 조씨는 문장이나 사건의 인과관계를 한사코 부정하는 이다. 그러니 실존적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책을 던질 것이냐, 말 것이냐. 조씨와 허씨를 만나 시집의 의미, 감상법 등을 들었다. 획기적인 시집이라지 않는가.



 -전문적인 감식안을 갖춘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 감상법을 추천한다면.



 ▶조=이번 시집이 하나의 의미망을 따라가지는 않기 때문에 여러 방법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가 보통 시집에 대해 갖게 되는 관심은 너무 재단되어 있지 않나. 작품은 어차피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런 걸 파악하려고 노력해보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허=시집은 제목이 없는 49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비선형(非線形)적인 독서가 가능한 작품이다. 좋은 시는 낭송해 보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번 시집도 무슨 말인지 모르더라도 따라 읽다 보면 독특한 리듬과 음조가 느껴진다. 그게 일차적인 쾌감을 준다.



 -형식실험이 극단으로 치우치면 소통 불능이 되지 않나. 이런 작업의 의의가 있다면.



 ▶조=다들 인과관계를 중시하는데, 사실 인과관계나 기억을 통한 현실의 재구성도 어떤 면에서는 가정이고 가설 아닌가. 내 시가 겉으론 혼란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어떤 종류의 전제, 내적 규정들에 따라 쓴 것이다. 혼란 자체도 질서라고 생각한다.



 ▶허=조씨의 작업은 굉장히 서정적이면서 지성적인 작업이다. 인류학적이고,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붙들고 씨름한다. 독자를 괴롭히는 것은 맞지만 한국 문학의 지성적인 전통을 계승하는 측면이 있다. 의미와 형식적인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야망이 큰 시인이다.



 -뜻을 알 수 없는 한자가 많이 나와 더 어렵다.



 ▶조=신조어에 가까울 만큼 잊혀졌던 언어를 쓸 때 뉘앙스가 새롭다. 잊혀진 한자 단어를 찾기 위해 4, 5년 전부터 논어·맹자 등 고전을 혼자 공부했다.



 ▶허=음악적이고 보다 풍요로운 느낌을 준다. 한국어의 지평을 확대한다고나 할까.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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