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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키워 신도 2만 된 교회 … 후임 선출 교인에 맡긴 목사

중앙일보 2011.01.06 00:19 종합 26면 지면보기



담백한 은퇴, 대치동 서울교회 이종윤 목사



20년간 키워온 서울 대치동 서울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은퇴한 이종윤 목사는 “제 목회를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회를 한 거다. 저는 종일 뿐이다. 종한테 무슨 재산권과 명예욕이 있겠나. 서울교회는 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마지막 설교였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교회에서 이종윤(71) 담임목사가 고별 설교 강단에 올랐다.



이날 교인 1만여 명이 교회를 찾았다. 예배당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설교는 말 그대로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1991년 늦가을, 169명의 교인들과 함께 서울교회를 개척했다. 교회 건물이 없어서 남의 아파트를 빌려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꼬박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서울교회는 등록 교인 수 2만 명, 출석 교인 수 1만 명 규모의 덩치 큰 교회로 훌쩍 자랐다.





이쯤 되면 목회자에게 교회는 아끼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개척 교회라면 담임목사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은퇴를 할 때 교회를 순순히 물려주기가 쉽지 않다. “내가 어떻게 교회를 키웠는데”라는 심정이 절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혈육인 아들에게 물려줘 ‘세습논란’이 일기도 하고, 원로목사로 머물며 실질적인 ‘상왕(上王)’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목사는 달랐다. 30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그를 만났다. 이 목사는 “은퇴 후에 서울교회에서 절대 설교를 하지 않겠다. 교회에 출석도 하지 않겠다. 후임 목사가 자유롭게 일하도록 자리를 비워주겠다”고 선언했다.



 사연이 있다. 그는 오래 전에 한 교회의 담임을 맡았다. 2~3년 만에 교회가 꽤 성장했다. 그런데 세습문제 때문에 교회에서 밀려났다. 이 목사에겐 쓰라린 경험이었다. 그때 자신을 향해 약속했다. “나중에 교회를 세워도 나는 절대 세습하지 않겠다. 은퇴 후에는 원로목사로 군림하며 설교를 하지 않겠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목사는 그 약속을 잊지 않았다. 또 그 약속을 지켰다. 그의 후임은 박노철(46) 목사다. 그는 이 목사의 아들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고, 심지어 같은 교단 출신도 아니다.



이 목사는 후임 목사를 뽑는 데 아무런 ‘입김’도 행사하지 않았다. 후임 선출은 전적으로 교인들에게 맡겼다. 예전에 서울교회에서 초청 설교를 하며 큰 박수를 받았던 박노철 목사를 교인들이 직접 선택한 것이다.



 “교인들에게 후임 목사를 추천하라고 했다. 추천서가 와서 봉투를 뜯어보니 그분이더라. 그래서 그분을 대상으로 당회(堂會·개별교회 의회)에서 무기명 투표를 했다. 그랬는데 100% 찬성이 나왔다. 전에 서울교회에 와서 초청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교회가 발칵 뒤집어질 만큼 설교를 잘했던 생각이 나더라.”



 이 목사의 결정은 파격적이다. 개신교계에 던지는 파장도 크다. 중·대형 교회일수록 후계자 선출 과정에서 잡음이 터져 나오기 쉽다. 원로목사 측과 후임목사 측이 두 패로 나눠 법적인 소송이나 물리적인 폭행을 불사하기도 한다. 2일 소망교회 부목사와 담임목사간 폭행 사건의 배경에도 그런 갈등이 깔려 있다. 이종윤 목사의 결정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이 목사는 “교회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저를 도구로 쓰심에 감사할 뿐이다. 후임 목사를 정할 때도 저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제가 왜 간섭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결정이 느닷없이 나온 것은 아니다. 서울교회의 목회자와 장로는 7년마다 재신임 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담임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무기명으로 진행되는 당회 투표에서 3분의2 이상의 찬성표를 얻지 못하면 담임목사도, 장로도 옷을 벗어야 한다. 이 목사도 20년 동안 ‘재신임 투표’를 두 번이나 거쳤다.



 “은퇴하지 않으면 2011년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한 번 담임목사면 영원한 담임목사, 한 번 장로면 영원한 장로로 안다. 그런데 물이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국회의원도 4년에 한 번씩 투표를 하니까 머리도 숙이고 하는 거지, 그냥 놔두면 머리를 숙이겠는가.”



 이 제도는 95년부터 시행됐다. 이 목사는 “교계에서도 이 제도를 주목한다. 그러나 섣불리 따라 하지는 못한다. 목사가 ‘이건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다’라고 믿으면 할 수 있다. 아무리 개척 목사라도 교인들이 원하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 그래도 목사든, 장로든 지금껏 부결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장로교답게 사회를 향한 이 목사의 발언은 꽤 보수적이다. 그러나 교회 내부를 향한 그의 시선은 상당히 개혁적이다. “교회 운영은 민주적으로 하고, 목회는 신앙적으로 해야 한다. 그게 저의 지론이다.”



 “은퇴 후 가장 큰 변화가 뭔가?”하고 물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똑같다. 그런데 새벽기도회가 없더라. 집에서 혼자 새벽기도를 했다. 그게 은퇴한 바로 다음날 새벽에 느낀 첫 변화였다. 목사도 사람인데, 허전하긴 하더라.”



 이 목사가 엷은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눈 쌓인 골목길을 걸어가는 노목사의 뒷모습이 담백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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