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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품격 있는 나라, 어떻게 만들까요

중앙선데이 2011.01.02 03:39 199호 2면 지면보기
요즘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는 온통 중국입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란 책에서 주장합니다. “역사적으로 1800년까지는 문화든 경제든 중국이 서양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중국이 2류가 된 것은 지난 200년 정도다. 중국이 깨어나고 있다. 지구에 사는 다섯 명 중 한 명은 중국인이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끝나간다. 중국은 세계의 수퍼파워가 될 것이다.” 중국 학자 왕샤오둥은 한술 더 뜹니다. “중국인이 왜 당신들(서양인)에게 호감을 사야 하는가. 앞으로 우리 힘은 더 커진다. 당신들이 우리 호감을 사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을 신경 쓰며 살아온 한민족 입장에선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센카쿠 열도를 놓고 일본을 밀어붙이는 방식이나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 보여준 중국의 태도를 보면 그게 과장도 아닌 것 같습니다. ‘초강대국 중국’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는 게 맞긴 한데,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그 힘센 나라 중국에 가서 살고 싶을까.” 답변이 쉽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관광하고 놀거나 사업해 돈 버는 거야 좋겠죠. 한데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듭니다. 이게 저만 그런 건 아닐 것 같습니다.

중국은 분명 강한 나라가 될 겁니다. 하지만 힘만 세고 매력이 없는 나라라면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긴 어렵습니다. 돼도 오래 못 갑니다. 망해버린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처럼 말입니다.

우린 어떨까요. 지난해 대한민국 많이 성장했습니다. 중앙SUNDAY 3면 기사가 보여주듯 ‘트리플 1000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내총생산(GDP)·무역규모·주식시장 시가총액이 모두 1000조를 넘었다는 거죠.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한데 조금만 따져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왜 자살률과 이혼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지?” 답변이 궁색합니다. 다시 물어봅니다. “한국은 외국 사람들이 이민 와서 살고 싶은 나라일까?” 역시 긍정적인 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자학(自虐)하자는 게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큰 성취를 이뤘습니다. 빵 없는 자유는 가짜 자유고 경제가 파탄 나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극빈(極貧) 상태에 빠지면 인간은 무기력해져 저항도 못합니다. 북한이 대표 사례일 겁니다. 그러나 트리플 1000조를 달성하고, 국민소득 2만 달러인 세계 10위 안팎의 무역대국에서 삶이 갈수록 팍팍해진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국민소득은 올라가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모순 말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겁니다. 그중에서 저는 국가의 품격(品格)을 문제 삼고 싶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여의도에서 하는 말과 행동만 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국민의 대표선수가 그렇게 천격(賤格)인데 국가의 품격을 말해 뭐하겠습니까.

언론의 잘못도 적지 않을 겁니다. 정의와 진리를 독점한 양 으스대면서 비수처럼 날카로운 말의 칼날을 휘둘러댄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 지켜야 할 금도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지식인의 책임도 있겠죠.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좌파와 우파의 진영 논리를 대변하면서 논리와 말을 폭력처럼 행사했습니다. 이념에 물든 삶에서 품격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합니다. 인간의 실존적 삶을 이데올로기가 지배할 때 그 삶은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품격은 어디서 나올까요. 정답이 있기나 한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삼가고 절제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금 유리하다고 의기양양하거나 조금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않은 그런 태도 말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살게 됐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품격 있는 삶과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이뤄내야 할까.’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학자든 언론인이든 신묘년 한 해 동안 그런 건강한 고민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중앙SUNDAY도 다짐합니다. 삼가고, 절제하면서 따뜻하고 품격 있는 지면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언제나처럼 결코 쉽지 않은 한 해일 겁니다. 그래도 독자 여러분,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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