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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과 계백 장군 사이

중앙선데이 2011.01.02 03:02 199호 14면 지면보기
남자 A는 매일 저녁 술을 마신다. 직원들과 회식은 물론 거래처 인사와의 저녁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교 동문회와 지역 향우회에도 A는 꼬박꼬박 참가한다.

정제원의 골프 비타민 <144>

주말에도 라운드를 마치면 A의 발걸음은 술집으로 향한다. 일주일에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A의 골프 실력은 여전히 ‘백돌이’ 수준이다. 구력이 10년이 넘었는데도 걸핏하면 ‘월백(越百)’이요, 잘하면(?) 110타도 불사한다. 오히려 두 자릿수 스코어를 기록하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계백 장군’이다. ‘계속해서 백돌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골프장’이란 ‘골프 연습장’과 동의어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골프 연습장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필드에 나가서 클럽을 휘두르는 날이 그가 골프 연습을 하는 날이다.

“싱글 (핸디캡) 골퍼라는 작자들은 매일 같이 연습장에서 산다잖아. 내가 연습장에 나갈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연습을 조금만 해봐 금방 싱글이 될 걸. 사업하는 사람이 연습할 시간 내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가. 우리 같이 바쁜 사람은 이 정도만 해도 잘 치는 거라고.”

남자는 필드에서 100자를 그릴 때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곤 그날도 역시 술집으로 직행해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인다.

남자 B는 매일 아침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40분 동안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면 다시 40분 동안 덤벨을 들고 몸을 만든다. 그리고는 러닝머신에 오른다. 남들은 앞을 보고 뛰는데 그는 몸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뒤로 서서 뛴다. 45분 동안 뛰고 난 뒤엔 비타민과 영양제까지 꼭 챙겨먹는다.

B는 1년 365일 동안 하루도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B는 매일 아침 러닝머신에 오른다. B가 이렇게 열심히 운동에 몰두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늙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다. 그의 꿈은 환갑을 넘어서도 댄스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다. B는 이렇게 말한다.
“뼈를 깎는 고통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죽을 만큼 열심히 운동을 한다. 내가 이렇게 몸을 만드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늙어서 춤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기 싫기 때문이다.”

남자 A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주말 골퍼다. 남들이 한다니까 그저 따라서 골프를 시작했을 뿐이다. 뚜렷한 성취 동기가 없기에 필드에 나가서 대충 클럽을 휘두르다 돌아온다. 그러면서도 세 자리 수가 적힌 스코어카드를 받아들 때마다 ‘지금은 바빠서 안 되지만 언젠가는 싱글 골퍼가 되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남자 B는 가수 겸 작곡가 박진영이다. 올해로 마흔이 된 ‘댄스 가수’ 박진영은 지난 연말 콘서트장에서 화려한 춤 솜씨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환갑을 넘어서도 댄스 가수로 남고 싶다는 그를 바라보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60세가 넘어서도 공을 잘 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박진영처럼 매일 아침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환갑을 넘어서도 ‘7자’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2011년이 밝았다. 남자 A로 남을 것인가, 남자 B가 될 것인가. 적어도 이번 주만큼은 이른 아침 자명종 소리에 맞춰 눈을 번쩍 떠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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