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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는 방법

중앙선데이 2011.01.02 02:04 199호 31면 지면보기
2주 전 프랑스 명화를 소개하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겨울방학 시즌인 데다 주말까지 겹쳐 관람객이 많이 몰렸다. 관람 방향을 표시하는 안내선을 따라 일렬로 줄을 서 감상해야 했다. 늘어선 줄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해 움직였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멈췄고 그 앞에서 1초도 머무르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미술관 관계자는 여기에서 한국 관객들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오래 감상하는 작품은 두 종류다.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이거나 앞 사람이 오래 본 그림이다. 가만히 지켜보면 관객들이 작품을 볼 때 다른 사람이 무엇을 보는지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On Sunday

이런 현상은 초·중·고교 미술교육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미술이나 음악은 훌륭한 즐길 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 교실에서 미술과 음악은 시간표 한 칸을 차지하는 시험과목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마저도 대학입시가 가까워지면 수업시간 자체가 없어지거나 자율학습시간으로 대체된다.

기자에겐 잊을 수 없는 미술시간이 있다. 중학교 2학년 가을, 추상화를 그리는 시간이었다. 미술 선생님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미술의 전부가 아니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화라는 장르를 소개했다. 그러곤 마음껏 도화지에 표현해 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며칠 전 농구를 하다 얼굴에 정통으로 공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몇 초간 세상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그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려 ‘농구공’이란 제목으로 4절 도화지를 온통 붉은색으로 칠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처럼 그리는 게 추상화지 이건 추상화가 아니다”라며 최하 점수를 줬다.

최하점수에 실망해 아직까지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상황이 재현되는 교실은 없을 것이다. 예술에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화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된 방식이 아쉬운 거다. 예술을 느끼는 감성은 대부분 학창시절 형성되지만 우리는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 예술 작품 앞에 서면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게 된다.

모나리자를 보고 감동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리다 만 듯한 눈썹을 보고 웃어도 되고, 묘한 미소에 가슴 설레도 된다. 정답은 없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보는 사람의 것이 된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모나리자를 봤다면 약 5000만 점의 모나리자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배경지식을 알면 더 넓고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야구 경기를 볼 때 해설을 들으면 경기가 더 재미있지만 해설이 없다고 야구 자체가 재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현대 미술은 어렵다고 불평한다. 우리는 작품을 평가해야 하는 평론가가 아니다. 그 때문에 어렵다고 좌절할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보자. 느껴지지 않으면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쿨’ 하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지면 비로소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 내 멋대로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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