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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관료들, 한·일 합방전 인력 그대로 승계…첫 입증

중앙일보 2010.12.28 16:20
일본의 식민지 통치 기구였던 조선총독부 근무 인력의 대부분이 병합전인 1905년 통감부 인력과 대한제국정부 인력에서 그대로 승계됐음이 처음으로 입증됐다.



연세대학교 안용식 명예교수는 최근 「조선총독부직원록」에 실려있는 고등관과 판임관(교원은 제외) 6,239명 전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병합 때 신규 임용된 179명을 제외한 6,160명 전원이 대한제국정부 또는 통감부에 재직했던 자들임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그러리라고 추정만 해왔을 뿐 전수조사를 통해 명확히 병합전의 연속선상에 있었음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1910년의 조선총독부가 명칭만 바꾸었을 뿐 통감부의 통치체제 및 그 방침을 그대로 지속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안 교수는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최근「일제강점초기 관료 분석」(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발행)이란 책을 펴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병합전의 전체 고등관과 판임관 7,356명 가운데 83.7%가 총독부관리로 넘어왔음이 드러났다. 병합전부터 고등관 및 판임관에 재직했다가 조선총독부에 와서도 계속 임용된 6,160명을 다시 나누어보면 한국인은 2,410명, 일본인은 3,750명으로 전체적으로 일본인이 단연 많았다. 이중 고등관을 보면 한국인이 495명, 일본인이 628명이었는데 한국인이 400여명이나 되었던 것은 지방관(도장관, 도참여관, 군수)이 335명에 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화에 공이 컸던 친일인사로 채워진 중추원의 고문, 찬의, 부찬의가 68명, 판검사가 73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독부 본부에는 일본인 고등관이 84명이 있은데 대해 한국인은 기술직 3명이 있었을 뿐이다. 특히 철도국, 통신관서, 세관, 전매국 그리고 경제관계기관에는 한국인 고등관이 1명도 임용되지 않았다.



하위직 관리에 속하는 판임관만해도 한국인 전체 1,915명 가운데 1,231명이 지방, 특히 군(郡)서기였다. 거기에 토지수탈과 관련하여 그 조사와 측량사무에 종사한 293명, 재판소서기와 통역 173명, 경찰의 경부직과 통역이 130명 정도였다. 총독부 본부만 해도 일본인 판임관이 362명이나 있었는데 한국인은 34명(그것도 기능직이 절대 다수)에 불과하였고 철도국에는 한국인 판임관이 1명도 없었다. 통신관서만 해도 일본인이 707명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한국인은 등대지기에 속하는 판임관 3명이 임용되고 있었다.



여기서 총독정치의 주요행정은 일본인만으로 독점적으로 결행되었고 비록 한국인이 고등관이 되어도 중추원과 같은 유명무실한 직위에 소외시키거나 극소수의 찬일 한국인을 지방의 대민접촉 직위에 전시효과를 노려 임용하는데 불과하였다. 하위직 한국인 관리도 지방에 대거 배치하여 식민통치의 주구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 일제는 1905년이후 5년간 한국을 식민화하기 위한 통치 기반을 확고히 정비하고 1910년 병합을 하면서 식민통치를 위해 한국인을 철저히 이용하는 정책을 폈음을 보여주었다.



중앙일보 디지털뉴스룸=백재현 기자 itbr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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