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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보내며 … 상처 입은 그들의 소망 ① 천안함서 아들 민평기 상사 잃은 윤청자씨

중앙일보 2010.12.28 00:33 종합 19면 지면보기



아들 감쌌던 국기 아직 보관
연평도 장병 빈소 달려갔다
아들 생각나 2함대에 떡 보내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를 22일 충남 부여군 은산면 자택에서 만났다. 윤씨는 “아직도 평기가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태 프리랜서]





올 한 해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상처를 받았다. 천안함 사건으로 46명의 자식이 떠나갔다. 부모는 그 아픔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김수철 사건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게 된 어린 딸을 보며 부모는 ‘내가 잘못해서 그랬다’는 자책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슬픔 속에 그냥 묻히지 않았다. 죽은 자식을 위해,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의 아들딸을 위해 아픔을 딛고 일어났다. 군대 간 모든 젊은이를 내 아들로 생각해 죽은 아들의 보상금을 기부한 어머니, 학교의 안전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어머니, 바다에서 천안함 장병 56명을 구조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팥이고 무고 다 직접 키운 거야. 평택에 있을 때 기자들에게 모질게 해 미안해. 내 정신이 아니었응께.”



 한 해 중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충남 부여군 은산면의 자택에서 만난 윤청자(67)씨는 동치미를 곁들인 팥죽 한 상을 차려 왔다. 그는 팥죽을 쑤느라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고 했다. 윤씨의 아들은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고(故) 민평기(34) 상사다. 그는 요즘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면 아들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농한기가 견디기 힘든 이유다. 그래서 떡을 찌고 엿을 만들어 이웃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윤씨는 농사일에 매달렸다. 동이 트기도 전에 들로 나가 해가 지고 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두운 데로 찾아다녔어. 아들 죽인 엄마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논두렁에 앉아 우는 날이 더 많았다. 윤씨는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고 했다.



 윤씨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건 1월이었다. 몇 달 만에 외박을 나온 민 상사는 북한이 백령도 인근에 해안포 사격을 실시했다는 소식에 집 앞마당에서 차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던 아들이었다.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 그릇 해 먹일 걸….” 윤씨는 아들을 잃은 절망감에 죽을 생각까지 해 봤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보름 넘게 애를 태우던 지난 4월, 윤씨는 평택2함대 내 항구에 두 차례나 나갔었다. 한 발만 더 디디면 아들이 있는 서해였다. 하지만 “가더라도 아들은 찾고 가야지”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막상 아들의 시신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시퍼런 게 물에 퉁퉁 불었어. 얼마나 추웠겠어. 안아서 덥혀 주고 싶은데 군인들이 내 양팔을 붙들더니 번쩍 들어. 그게 마지막인데, 이제 더는 못 보는데….” 윤씨는 당시 아들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태극기를 아직도 갖고 있다. 아들같이 느껴져 태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왔어. 국민이 모은 성금을 보냈다는 거야. ‘아직도 군대에 애들이 저렇게 많은데’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어. 저 애들도 평기처럼 죽으면 어쩌나 무서워지고. 이제 그 애들이 다 내 아들인데.” 청와대 오찬 자리에 1억원짜리 수표를 들고 간 건 그래서였다. 윤씨는 큰돈을 기부한 이유에 대해 “북한을 공격하라는 게 아니었다. 잘 막아서 죽는 아이가 또 생기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를 찾아간 것도 같은 이유였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조사 8대 의혹’이란 서신을 보낸 직후였다. “천안함이 자작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해. 저러다 애먼 아들 하나 더 잡지 싶은 거야. 나 같은 엄마 하나 더 만들고.”



 윤씨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읽을 줄은 알아도 평생 어디 가서 이름 석 자 써 본 일 없이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이 윤씨를 바꿔 놓았다. 청와대에서 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까지 가 보지 않은 곳이 없다. 아들이 또 죽어 나가는 건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가 무슨 투사라도 되는 줄 알아. 아녀. 그냥 엄마야. 아들 살리고 싶은 엄마.”



 윤씨는 지난 11월 2명의 아들을 또 잃은 것 같았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해병 장병 2명이 전사한 것이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8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는 분당 수도병원에 차려진 빈소로 달려갔다. 그래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죽은 평기는 눈에 선하고 남은 아들들은 눈에 밟히고….” 윤씨는 빈소를 다녀오자마자 쌀 두 가마니를 찧어 떡을 만들었다. 그러곤 아들이 근무했던 평택2함대를 찾아갔다. 떡국이라도 따뜻하게 끓여 장병들에게 먹이라고 당부를 하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군대 가 있는 애들이 자그마치 60만 명이야. 그 애들이 다 내 아들인데, 그 아이들 다치는 걸 어떻게 봐. 죽은 건 평기 하나로 족해.”



부여=정선언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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