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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평화 지키며 주말 골프 즐기기

중앙선데이 2010.12.19 02:23 197호 14면 지면보기
대기업에 다니는 학교 후배 A는 소문난 애처가다. 30대 후반인 그는 틈만 나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을 속삭인다. 이를테면 이런 대화다.

정제원의 골프 비타민 <142>

“자기, 오늘 뭐했져? 웅, 그랬져? 나야 지금 강남에서 한잔하고 있는 중이지. 아무리 늦어도 11시까지는 들어갈게.”

우리 또래 같으면 안식구와의 통화는 남들이 들을까 조심하련만 그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눈치를 보긴커녕 하늘 같은 선배들 앞에서도 귀가 시간을 당당히 공표한다. 오후 11시 이후에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새로운 이닝, 아니 새로운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것이다.
하루는 선배들이 A에게 물었다.

“얌마, 너는 왜 그렇게 사냐. 마누라가 그렇게 무섭냐.”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뭐가 아냐. 우리가 보기엔 영락없는 공처가인데. 너는 그래 가지고 주말에 골프는 어떻게 치냐. 그것도 일일이 마누님 허락을 받는 거냐.”
“저, 그게 아니라. 사실은….”

애처가인 동시에 골프 애호가인 A는 주말에 골프장에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주말이면 초등학생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기 때문에 골프장 출입이 꺼려진다는 것이다. 모처럼 쉬는 휴일에 골프장에 가는 것을 부인이 무척 싫어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근데, 너 주말에 골프장에 자주 가잖아. 그건 어떻게 된 거야.”
A는 그제야 아내 몰래 주말에 골프를 즐기는 비법을 털어놓았다. A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언제든 골프장에 나갈 수 있도록 미리 옷가방을 싸서 승용차 트렁크에 넣어둔다. 골프 클럽 역시 항상 차에 실어둔다. 그러고는 골프 약속이 있는 주말이 되면 회사에 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골프장으로 향한다. 라운드를 마친 뒤엔 젖은 양말과 속옷 등을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 주말에 골프장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부인에게 알려지면 경을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젖은 빨래를 아내 몰래 하루에 한 개씩 꺼내놓는다. 토요일 골프를 다녀왔다고 치면 일요일엔 젖은 양말을 내놓고, 화요일쯤엔 속옷을 내놓는 식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부인에게 발각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A는 요즘 세탁소 단골손님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가까운 세탁소에 빨래를 맡기면 안 된다. A는 집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는 세탁소를 애용한다. 젖은 팬티와 양말, 상·하의를 다 맡기면 2만원 정도가 든다고 그는 털어놨다. 그때 A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던 50대 중반의 선배 B가 말했다.

“거참, 그래도 그때가 좋을 때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B선배는 서글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나이가 되면 말이야. 집에서 삼시 세끼를 다 챙겨먹으면 어부인들이 싫어한다고. 한마디로 집에서 밥 달라고 하는 건 귀찮다 이거지. 그래서 집에서 한 끼도 먹지 않는 남편은 ‘영식(0食) 님’이라고 부른다잖아.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남편은 ‘일식(一食) 군’이 되는 거고. 그럼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건 ‘두식(二食)이 놈’이라지. 마지막으로 하루에 세 끼를 집에서 다 챙겨먹는 간 큰 남편은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그건 ‘삼식(三食)이 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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