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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게 저민 생강에 계피·대추 넣고 끓이면 ‘겨울철 보약’

중앙선데이 2010.12.19 00:47 197호 10면 지면보기
드디어 올 게 왔다. 감기다. 그것도 이번엔 좀 세게 왔다. 이렇게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드러눕기는 참 오래간만이다. 그래도, 이제 기말 성적 처리를 제외하고는 올해의 일정들은 얼추 끝내놓은 상태이니, 용케 잘 버텼다 싶다. 난 오랫동안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였다. 환절기마다 감기였다. 코를 훌쩍거리거나 기침을 하면서 시험을 보는 곤혹스러운 일은 그저 일상이었다.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 <40> 생강차, 칡차, 대추차

그렇게 늘 달고 다니던 감기로부터 해방돼 좀 편안해진 것은 십수 년 전이었다. 서울에서 벗어나 공기 좋은 이천 시골에 들어온 후였다. 이천에 지은 집은, 시멘트를 쓰지 않고 오로지 흙으로만 지은 집이었다. 흙이 수축하면서 바람구멍이 많이 생겨 겨울에는 위풍 때문에 꽤 추웠지만, 차렵이불만 깔아놓으면 바닥은 절절 끓었고 가습기가 없어도 건조함을 모르고 살았다. 골골거리는 약한 체질이야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지만, 몸이 약간 으슬으슬하다 싶을 때 뜨끈한 황토방 온돌에서 푹 자고 나면 개운해졌다. 좋은 공기와 황토의 기운이 몸을 빨리 회복시켜 준 모양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2년에 한 번쯤 된통 아프기는 했다. 그거야 이제 그만 좀 쉬라고 몸이 시위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로 이사 오고 난 후, 감기 기운이 자주 찾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서울의 탁한 공기에 시멘트 집과 만났으니 몸도 예전처럼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몸을 다스리는 방법을 좀 깨달아 조심조심하면서 살았는데, 이번에 누적된 피로가 크게 터진 것이다. 그러고 나니 ‘생강차나 칡차라도 열심히 끓여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된다. 일을 피할 수 없었으니 피로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주거 환경도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니, 먹는 것이라도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공기 좋은 이천에 있을 때처럼 커피를 마시며 지낸 것이 문제였다 싶다.

당장 화분에 묻어두었던 생강을 캐내고, 가을에 말려둔 칡도 꺼냈다. 생강은 11월 초중순이 제철이다. 생강을 수확해 저장창고에 들어가기 전이니, 값이 저렴하고 질도 가장 좋다. 이때 만원어치만 사놓으면 김장을 하고도 생강차를 몇 번이나 끓여 먹을 정도로 남는다. 남는 생강은 빈 화분의 흙 속에 묻어놓거나 냉동실에 보관하면 된다. 냉동된 생강은 물에 씻으면 껍질까지 훌렁훌렁 잘 벗겨져 손질하기가 편하다.

생강을 얇게 저며 주전자에 담고 계피도 한 조각 넣는다. 가을에 풋대추를 먹다가 남아 스스로 말라 있는 것도 몇 알 넣고 끓였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은근한 불로 끓인다. 톡 쏘는 향만 우러나오는 단계를 넘어서서 생강의 진짜 맛이 묵직하게 우러나온다. 이때부터 따라 먹으면서 한두 번 물을 더 부어 더 끓여 먹는다. 몸도 따뜻해지고 값도 싼, 정말 좋은 음료다.

칡은 올가을에, 오래간만에 갖춰놓게 되었다. 불광동 전철역 앞 좌판에서, 생칡을 작두로 쓱쓱 썰어 파는 노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야생의 물건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가 있는가. 한 봉지에 만원을 주고 사서 그날 당장 한두 쪽을 물에 넣고 끓여 먹고, 나머지는 채반에 쭉 펼쳐 놓았다. 사올 때에는 물기가 많다고 느꼈는데, 워낙 녹말이나 섬유질이 많아서인지 칡은 정말 잘 말랐다. 3, 4일 만에 상한 것이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모두 말랐다. 종이타월에 잘 싸서 양파 망 속에 넣어 베란다에 매달아 놓았다. 이 정도면 통기가 잘 되니 곰팡이가 필 우려 없이 내년까지 잘 먹을 수 있으리라.

칡차도 별로 손이 가지 않는 음료다. 생칡이든 말린 칡이든 한 쪽을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맛은 쌉쌀하고 칡 향이 강하게 난다. 농도야 취향에 따라 정하면 되는 것이니, 향이 마음에 들면 먹을 만한 음료가 된다. 그 향의 생생함이란 인스턴트 칡차와 댈 바가 아니다.

생강이나 칡을 끓인 것은 맛이 매우 강한 만큼, 설탕이나 꿀을 넣어 먹기도 한다. 그도 나쁘지는 않으나, 나는 설탕이 든 음료를 먹고 난 후 입에 남는 시큼한 맛이 싫어서 다른 방법을 취한다. 당분이 아닌 단맛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것은 감초다. 감초를 1, 2쪽 정도 함께 넣어 끓이면 감초의 향과 함께 단맛이 우러나온다. 하지만 이 단맛은 당분이 아니므로 설탕이나 꿀처럼 입에 시큼한 맛을 남기지 않는다. 단 것을 먹고 난 후의 시큼한 맛이란, 입 속에 남아 있는 당분을 세균이 분해해서 산으로 바꾸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당분이 아닌 단맛은, 치아 건강에도 나쁘지 않고 살 찔 우려도 없다. 감초 대신 수국차 잎을 잠깐 우려내도 된다.
대추차도 겨울철에 좋은 차다. 생강, 칡, 대추 모두 성질이 따뜻해 나처럼 몸이 찬 사람들에게는 그만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성질들 때문에 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예컨대 생강차는 임신 중에는 아기의 태열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 좋고, 고혈압인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고 한다. 칡차도 임신 중에는 피해야 하는 차인데, 대추차는 임신부에게 좋은 차로 꼽힌다.

대추차는 생강이나 칡에 비해 좀 많이 넣어야 한다. 주전자에 마른 대추를 넣으면 동동 뜨는데, 두어 켜 꽉 차도록 넣어야 맛이 있다. 이렇게 대추를 많이 넣고 오래 끓이면 대추의 단맛이 우러나와 설탕이나 꿀 같은 감미료의 도움이 없이도 맛있는 차를 즐길 수 있다. 더 맛있는 차를 원하면, 이렇게 푹 끓인 대추와 물을 체에 걸러 걸쭉한 차로 마시면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정말 속도 든든하다.
이렇게 다 아는데도 결국 감기가 걸리고 말았으니, 나의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다. 남은 겨울이라도 건강하게 보낼 궁리를 해야겠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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