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사랑 나의 '오빠',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다면

중앙선데이 2010.12.19 00:22 197호 5면 지면보기
“비록 멘션 한번 받아보기 힘든 사람이라는 거 알지만, 트윗 읽다 보면 진짜 까도남 김주원인 듯해서 빠져 읽곤 해욤 ㅋㅋ.”수줍은 웃음과 함께 이 말을 전한 이는 ‘김주원 패러디 트위터’(@CEO_KimJooWon, 중앙일보 12월 16일자 28면)의 어느 여성 팔로어.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주원이 환생한 것도 아니고 배우 현빈이 직접 하는 것도 아닌, 그저 ‘짝퉁’의 역할놀이인 줄 알면서도 빠져든다는 고백이다. 그녀만이 아니다. 생긴 지 2주일이 채 안 된 이 트위터의 팔로어는 8200명을 넘어섰다. 시청률 30%에 다가서며 화제몰이 중인 ‘시크릿 가든’의 위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토·일 오후 9시50분)

현빈이 분한 김주원은 드라마 방영 초부터 화제의 중심이었다. 호텔 로비에나 쓰일 듯한 샹들리에를 생필품이라고 주장하고,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수제 트레이닝복을 고집하는 이 남자는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이란 말로 부족해 ‘까도남’(까칠한 도시남자)으로 불린다. 안하무인 재벌 2세이면서 미워할 수 없는 도도함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와 닮았다. 그러면서도 “이 여자가 내겐 김태희고 전도연”이라는 고백으로 ‘프라하의 연인’ 필을 풍기기도 했다.

‘시크릿 가든’은 5부에서 8부까지 주원과 라임(하지원)의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으로 또 한번 팬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주원의 영혼이 깃든 하지원이 양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찡그린 불만 포스를 작렬하는가 하면, 라임의 영혼이 깃든 현빈은 동경해오던 오스카와 입술을 맞닿은 뒤 수줍은 듯 한쪽 발끝을 세워 톡톡 굴렸다. 현빈의 하지원 흉내내기, 하지원의 현빈 흉내내기는 그 자체로 충분한 볼거리이긴 했지만 이를 두고 ‘무리수’란 평가도 적지 않았다. 남녀 두 사람이 가까워지기 위한 극적 장치치고는 지나치게 판타스틱하고, 주원의 시크한 매력이 손상되는 위험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마련한 ‘시청자 서비스’가 아니라면, 굳이 이 장치를 사용한 이유가 뭘까. 흥미롭게도 이 장치를 통해 ‘기적’을 맛본 것은 오스카의 오랜 팬이었던 라임이다. 라임은 주원의 몸을 빌려 오스카와 한 방, 한 침대에서 눈을 뜨는 행운을 경험한다(주원이 아줌마 일색의 찜질방에서 깨어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백화점 오너 따윈 관심도 없고 그런 지위를 부러워하지도 않던 그녀가 몸이 바뀐 것을 유일하게 기뻐한 이유가 오스카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오스카를 질투하는 주원에게 그녀는 말한다. “스턴트 주제에 고졸 주제에라는 말에 죄송합니다 해야 할 때, 어제까지 내 앞에서 환하게 웃던 동료가 다쳐 걷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오스카 노래는 나한테 진통제였어.”

그렇게 ‘시크릿 가든’은 판타지 멜로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낸다. 한류스타 오스카를 고리로 대중문화 팬심에 관한 메타픽션으로서 또 다른 ‘인어공주 이야기’를 펼쳐보이는 것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다가 지금은 애증으로 으르렁대는 오스카-윤슬(김사랑) 관계에서 뚜렷하다. 윤슬이 ‘톱스타 킬러’라는 험담을 듣고 오스카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며 말한다. “걔는 그냥 내 빠순이야!” 열성팬에 대한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담은 ‘빠순이’라는 단어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딜레마를 건드린다. 이 모든 열광, 이 모든 순정은 그를 왕자로 만들어주고 난 뒤 물거품으로 사그라질 운명이다.

‘온에어’를 통해 대중문화가 생산되는 생생 현장을 드러냈던 신우철 PD-김은숙 작가는 ‘시크릿 가든’을 ‘파리의 연인’의 변형 따위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방영 시간대부터 이를 확인해준다. 전작이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였을 정도로 이 시간대는 타깃층 자체가 30대 이상이다. 한때 ‘파리의 연인’을 보며 “애기야”라는 말에 설레었던 그녀들, 삼순이의 연하 남친 삼식이(현빈)에게 열광했을 누나들, 거슬러 올라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던 종사관 나리 말에 하지원과 함께 애틋해하던 ‘빠순이’들은 이제 아줌마가 됐다. 오스카의 말처럼 “연예인은 남 행복하라고 있는 불행한 직업”이란 것도 알게 됐을 나이다. 어릴 적 바라만 봐도 설레었던 오빠들이 토크쇼에 나와 ‘그 시절 그 인기’를 회고하는 모습을 보며 그 생계형 고충을 헤아릴 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빈은 현빈이고 나는 그와 영혼이 뒤바뀌길 꿈꾼다. ‘진짜’가 아닌 줄 알면서도 ‘짝퉁’이라도 행복하게 트윗을 날릴 수 있는 판타지한 경험, 2010년 말 ‘시크릿 가든’을 둘러싼 팬심의 풍경이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