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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러다 ‘배추공사’ 나올라

중앙일보 2010.12.16 19:43 종합 38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금(金)배추, 금상추로 상징되는 물가폭탄이 서민경제를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이 배추가 얼마짜리인지 아는가?”



 10월 초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배추와 양배추·상추를 들고 나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전 의원의 ‘언론 감각’은 탁월했다. 배추를 들고 질의하는 전 의원 사진은 온 신문을 도배했다.



 그 후 두 달 반이 흘렀다. 배추 파동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정부는 지난주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농수산물 수급 안정을 위해 1000억원을 더 쓰기로 결정했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서민생활에 밀접한 농산물 가격은 총력을 다해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배추 파동이 재연되지 않도록 농업 관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계약 재배도 확대된다. 정부는 배추 파동을 본질적으로 이상기후 탓으로 본다. 지난번과 같은 정치권과 여론의 혹독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농산물 수급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줄이는데 1000억원의 ‘보험료’를 더 쓰겠다는 것이다. 계약 재배 면적을 늘리는 게 대표적이다. 농산물 가격이 뛸 때는 계약 재배 물량을 시장에 풀고, 작황이 좋아 가격이 너무 낮으면 밭을 갈아엎어 폭락사태를 막을 수 있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농산물 시장의 수급 안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상기후로 아무리 공급이 딸린다고 해도 배추·무 가격이 두세 배 이상 뛰게 되면 경제 시스템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어느 정도 개입이 적절할지는 정부도 정치권도 청와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정부는 배추 파동 이후 농수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자금을 620억원에서 1600억원 정도로 늘렸다. ‘김치도 못 먹느냐’는 여론의 불만과 신선식품 물가 급등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정치권 탓에 값비싼 정책비용을 온 국민이 나눠 치르게 된 셈이다. 배추의 정책 우선순위가 이렇게까지 높아야 할까. 더 의미 있게 돈을 쓸 수는 없었을까. 이를테면 최근 국회에서 논란이 된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비 같은 데 말이다. 정부가 국비에서 여기에 한시적으로 지원한 돈은 지난해 542억원, 올해 203억원이었다.



 정부는 김장철을 맞아 평년보다 가격이 비싼 마늘·무·배추를 싸게 공급한다. 시장가격과의 차이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다. 혜택은 재벌 총수든 극빈층이든 누구나 똑같이 돌아간다.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대신 취약층에만 배추 쿠폰이나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직접 주는 방안은 어떨까. 재정부의 한 간부는 “배추나 무는 전기·수도처럼 보편적인 주요(staple) 재화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정부가 화끈하게 시장을 대체하고 배추공사(公社)·무공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요즘 분위기에선 꼭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자상하게도 청와대 정무수석과 대통령까지 나서 치킨 값까지 챙기는 세상이니….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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