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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한 페라리에 복수하려 창업 “백미러에 황소 보이면 일단 비켜라”

중앙일보 2010.12.16 19:23 경제 9면 지면보기



[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람보르기니





이탈리아의 수퍼카 람보르기니는 외관이나 성능에서 힘센 황소를 연상케 한다. 노란색 황소 로고처럼 말이다. 창업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1916~93)는 원래 트랙터 사업가였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버려진 장갑차를 개조해 트랙터를 만들어 부자가 됐다. 레이싱에 출전할 정도로 자동차광이었지만 회사 설립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동차와의 인연은 그가 1960년대 소유했던 ‘페라리 250GT’가 터줬다. 당시 이 차는 클러치에 결함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알려주기 위해 페라리를 찾았다. 하지만 페라리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는 “당신이 자동차를 안다고? 트랙터나 잘 만들어”라며 문전박대했다.



자존심에 금이 간 그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수퍼카를 만들겠다”며 62년 볼로냐에 자신의 성을 딴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다. 로고도 자신의 별자리에서 따왔다.



 처음부터 목표는 페라리 타도였다. 신차는 페라리와 같은 12기통 엔진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배기량은 더 커야 했다. 페라리가 4단이면, 람보르기니는 5단을 고집했다. 당시 무모한 시도라는 우려도 많았지만 이듬해 12기통 엔진을 단 첫 모델 ‘350GTV’를 내놨다.











 이어 66년 나온 ‘미우라’(사진)는 명차 반열에 오른다. V12 4000㏄ 엔진을 달고 최고 350마력에 시속 280㎞를 냈다. 당시로는 충격적이었다. 이 차가 기념비가 된 것은 당시 경주차에나 썼던 최초의 미드십(엔진을 운전석 뒤에 배치해 무게 균형을 맞추는 방식) 엔진을 달아서다. 미우라는 페라리를 능가했지만, 회사는 트랙터 사업의 부진으로 쇠퇴의 길을 걷는다. 결국 71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은퇴한 뒤 파산한다. 이후 20년 동안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제2의 전성기는 98년 아우디가 인수하면서다. 아우디의 지원 아래 개발한 ‘무르시엘라고’는 2001년 출시 이후 12기통 수퍼카 시장에서 최고가 됐다. 다음 해 ‘베이비 람보’라고도 불린 V10 엔진을 단 ‘가야르도’까지 성공하면서 연간 2000대 판매를 이어오고 있다. 무르시엘라고와 가야르도는 2007년 한국에 들어와 연간 30여 대가 팔린다.



 내년 초에는 종자를 개량한 황소가 등장한다. 무르시엘라고의 후속인 83X(코드명)다. 차체를 알루미늄과 탄소섬유로 제작해 무게가 소형차급인 1500㎏에 불과하다. 여기에 700마력을 내는 V12 6498㏄ 엔진을 얹었다. 아반떼 무게에 700마력 엔진을 달았다고 생각해보라. 최고시속은 350㎞를 넘는다. 람보르기니 등장 이후 생긴 상식! 고속도로에서 황소 로고가 백미러에 들어오면 일단 길을 비켜주는 게 이롭다.



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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