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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추기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2010.12.16 01:09 종합 6면 지면보기






백성호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한국 천주교가 시끌시끌하다. 정진석 추기경의 4대 강 발언에 대해 정의구현사제단은 “추기경이 2000년 교회 전통인 주교단의 합의정신과 단체성을 깨뜨렸다. 4대 강 공사 때문에 빚어진 교회분열의 가장 큰 책임은 추기경께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부 25명도 성명을 냈다. “정 추기경이 주교단 전체의 구체적인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혼란과 교회분열을 일으킨 것은 책임져야 할 문제다. 서울대교구장 직을 용퇴하라”고 주장했다.



 정 추기경이 주교단의 뜻에 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정 추기경은 8일 성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날 추기경의 옆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모든 질문과 답변을 기억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정 추기경은 ‘4대 강 개발’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정 추기경은 “하느님은 사람에게 지구를 가꾸라고 했다. 그건 개발은 하지만 파괴는 안 하는 거다. 난개발, 자연파괴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고 말했다. “4대 강 개발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발전을 위한 개발이면 무난한 거고, 파괴를 위한 개발이면 안 된다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정 추기경의 입장은 명료했다. ‘4대 강 죽이기’가 아닌 ‘4대 강 살리기’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원론적 답변이었다. 특정한 정치적 판단이 녹아있지 않았다. 주교단의 입장과 배치된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지난 3월 4대 강 관련 성명을 냈던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찬성과 반대, 확실한 입장을 해달라는 질문에 “사실상 반대”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대전제가 있었다. 4대 강 개발이 환경파괴와 난개발로 치달을 경우였다. 추기경과 주교단은 표현 방식만 달랐을 뿐 서로 통하는 모양새였다. 정 추기경의 발언이 좀 더 원론적일 뿐이다.



 주교단의 성명과 추기경의 간담회, 두 현장을 지켰던 기자로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추기경 발언’ 해석에 많이 놀랐다. 4대 강 사업에 대한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치적 신념, 정치적 예단이 느껴졌다. 사실 누구나 자신만의 ‘프리즘(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프리즘을 통해선 굴절되기 이전의 실체를 만나기가 어렵다.



정 추기경은 간담회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참 묘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서를 읽으며 이 말이 자주 생각났다.



백성호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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