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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한 줄, 한 자 탈고하기 위해 자다가도 벌떡

중앙일보 2010.12.16 00:29 종합 29면 지면보기
겨울, 바람의 칸타타


김성현씨 당선 소감

오래된 LP판이 하나씩 읽고 있는



스산한 풍경 위로 바람이 불어간다



노래가 다 그런 것처럼 스타카토 눈빛으로





산까치 몇 마리가 앉았다가 떠나버린



잎 다진 가로수들 우듬지 그 사이로



흰 구름 붉은 마음은 서쪽으로 흐르고





음역(音域)의 강을 건넌 짧아진 하루해를



빠르게 궁굴리며 다시 불어온 바람



아무리 되짚어 봐도 길은 너무 아득하다





누구나 한두 번쯤 절망 끝에 섰겠지만



지워진 음표만큼 눈은 더욱 깊어져서



LP판 둥근 세상으로 봄날은 또 오겠지











어디를 스치느냐에 따라 바람의 지문은 달라집니다. 초원에서 부는 바람, 숲을 지나는 바람, 빌딩을 휘감는 바람은 저마다의 소리가 있습니다. 언어 또한 그러합니다. 소설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적 지문’이라고 했습니다. 저 멋있는 말을 나보다 먼저 한 최명희 작가를 질투하며 3장 6구 그 아름다운 시조의 틀 속에 생각의 지문을 하나씩 찍었습니다. 한 줄을 퇴고하기 위해서 며칠을 고민하고, 한 자를 탈고하기 위해 자다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준 중앙일보에 감사 드립니다.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이 길로 인도해준 벗 이병철 선생님, 시조의 길을 함께 걷는 유선철·김석인·곽길선 선생님, 무엇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 이교상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보다 완성된 작품을 쓰라는 격려라 생각하며, 시조의 과학화와 세계화를 위해 주춧돌 하나를 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력=1959년 경북 김천 출생, 계명대 심리학과 졸, 김천고 상담교사. 열린시조학회 대구경북 사무국장.



[심사평] 자연스러운 시상, 긍정의 사유 빛나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은 국내 최고의 시조 등용문이다. 자신의 절실한 뜻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잘 표현한 김성현씨가 마지막 문을 통과했다.



 당선작에서는 사물을 통해서 새로움을 읽을 줄 아는 역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단순 서정에서 한 발짝 전진하여 인생의 의미를 찾아낸 점은 질량감을 느끼게도 했다. 오래된 LP판을 통해 사념을 독특한 질서로 정리한 점도 그렇지만 그것을 음을 읽듯 깊은 사유로 확장시키는 힘은 세심한 관찰과 일상의 성찰이 가져온 소산으로 보였다. 특히 아무리 칼바람이 불어도, ‘되짚어’ 보는 ‘길’이 ‘아득’해도, ‘둥근’ 이 ‘세상으로 봄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긍정의 사유는 힘든 세상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진술과 묘사의 적절한 활용, 자연스러운 시상도 눈길을 끌었지만, 이렇듯 시의 사회적 기능에 그 역할을 다 하고 있어 한층 믿음이 갔다. 이제 시조 세계에 한 점을 더하기를 바라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까지 당선자와 함께 겨룬 이는 김영란·김경숙 씨였다. 김영란씨의 ‘마음의 벼랑’은 그 시조보법이 매우 안정적이고 단아한 수준작이었다. 그러나 내용이 다소 추상적이라 견고하지 못하였다. 김경숙씨의 ‘환지통’도 밀도 있는 전개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소재의 상투성이 문제로 지적됐다.



◆심사위원=정수자·오종문·이종문·강현덕(대표집필 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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