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은은한 향기 나는 시조로 두고두고 보답해야지요

중앙일보 2010.12.16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신인상 이태순씨 소감





저물 무렵, 느닷없이 걸려온 수상소식에 와들와들 떨었다. 이 저녁이 환하다. 축제처럼 눈이 내린다. 낮은 지붕굴뚝에 따뜻한 연기가 피어 오른다. 그리워도 참았던,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 웃으며 다가온다.



 밥 먹듯 꾸역꾸역 삼킨 시가 몸 속을 돌다 툭 하면 곪아터지기 일쑤였다. 스스로 부족하기에 가두어두었던 시, 밖으로 피워내지 못해 시들어버린 시들을 감싸 안으며 참 많이 아팠었다. 서정에 기대 수없이 쏟아놓은 말, 자연의 신에게 허락도 없이 훔쳐온 풀잎 나무 꽃들의 맑은 영혼과, 이 추운 겨울 변방에서 살아가는 성자들의 눈빛과, 홍시 몇 개로 불 밝힌 오지의 빈 집들을 수시로 내 시에 뭉뚱그려 넣으며, 행여 그 길 헤집고 다니며 세속의 때나 잔뜩 묻혀놓고 상처나 내지 않았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백 마디 말보다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은은한 빛깔과 향기 나는 시조로 두고두고 보답할 일이다.



 글 잘 쓰라고 늘 지켜봐 주시는 선생님들과 심사위원님, 만날 때 손잡고 격려해주시는 문단의 선배님, 문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약력=1960년 경북 문경 출생. 200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7년 ‘오늘의 젊은 시조시인상’ 수상. 시집 『경건한 집』. 시조 모임 ‘이천’ 동인.



저녁 같은 그 말이



늦가을 무를 썰다 느닷없이 마주친



무 속 한가운데 갈라터진 마른 동굴



창시 다



쏟아버리고



검은 벽 발라놓고



알싸한 무밭 건너 가물가물 들려오는



“내 속을 뒤집으면 시커멓게 탔을끼라”



울 어매



청 무꽃 같은,



저녁 같은 그 말이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