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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 헌신’ 30년 … 교사 하려고 직업까지 바꿔

중앙일보 2010.12.16 00:08 종합 24면 지면보기



개인 부문 대상 박영도씨





야학을 찾는 이들의 애절함은 시대마다 변해 왔다. 1970~80년대엔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교 대신 일터에 나가는 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대비하기 위해 야학을 찾았다. 90년대 들어서는 가정주부와 노년층들이, 최근엔 다문화 이웃들이 문을 두드린다.



 30년간 이런 야학과 함께해 온 이가 있다. 수원제일평생학교 박영도(52·경기도 수원·사진) 교장이다. 학교를 뛰쳐나온 10대부터 노인들까지 모두가 그의 제자다. 2000명 정도가 그와 함께 호흡했다.



 식품가공업체를 운영하는 박 교장은 “직업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고 야학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 운영비의 50% 정도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조를 받지만 나머지는 자체 충당한다. 교사와 졸업생이 십시일반으로 운영비를 마련한다. 박 교장은 99년 제약회사 연구소 수석연구직을 그만두고 벤처회사를 설립했다. “야학에 시간을 내기 쉽고, 학교 재정에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박 교장은 78년 대학 1학년 때 야학과 연을 맺었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돈이 없어 공부할 기회를 빼앗긴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 학기 동안 교사로 봉사하는 선배를 도와 학교 청소 등의 궂은일을 맡았다. 군대 제대 후 대구 효목성실고등공민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농촌진흥청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구 야학과의 인연은 끊어졌다. 그러나 2년 뒤 서울의 제약회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YMCA 청소년학교에서 다시 야학교사를 했다.



 일과 야학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6년여의 YMCA 교사 생활을 정리했다. 그러나 그만둔 지 10개월 만에 정류장에 붙어 있는 야학교사 모집 광고가 그를 잡았다. 그리고 94년부터 현재까지 수원 제일평생학교에서 야학교사로 일하고 있다.



 대학생 교사 5~6명이 10여 명을 가르치던 학교는 부쩍 달라졌다. 현직 교사와 경찰 등 봉사자가 30여 명으로 늘었고, 남녀노소 150여 명의 배움터로 성장했다.



 박 교장은 “가진 것이 있다면 남보다 조금 더 배웠다는 것뿐이었기에 그것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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