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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합격’ 플래카드

중앙일보 2010.12.16 00:08 종합 39면 지면보기








조선시대 과거 급제는 일신의 광영이요,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래서 재수·삼수가 아니라 평생 매달리기도 했다. 최고령 급제는 성종 20년(1489) 문과의 김효응으로 당시 76세였다. 성종실록은 ‘김효응에게 높은 품계를 제수하고 의식을 하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꿈을 이루었지만, 정작 꿈을 펼칠 시간이 없었다. 급제 이듬해 숨을 거둔 것이다. 퇴계 이황도 소과(小科)에서 세 번 떨어졌고, 이항복도 진사시에 낙방해 성균관 청강생으로 5년을 공부한 후 알성(謁聖) 문과에 급제한다.



 그러니 장원급제라도 하면 온 장안이 떠들썩했다. 홍패에 어사주, 어사화 꽂고 사복마(司僕馬)에 오르면 천하를 얻은 기분이렷다. 한양가(漢陽歌)에 “아침에 선비러니 저녁에 선달이라. 화류춘풍(花柳春風) 대도상에 세마치 길군악에 무동은 춤을 추고 벽제소리 웅장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유가(遊街)’를 묘사한 것이다.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 했다. 비단 옷 입고 밤에 다니면 누가 알아주나. 항우(項羽)도 그럴진대 여느 선비랴. 온 동네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진사시·한성시·별시에 식년 문과까지 아홉 차례나 장원한 율곡 이이의 삼일유가(三日遊街)는 이해가 된다.



 그런 유습일까. 입시나 고시철이면 중·고교와 대학캠퍼스에 ‘축 합격’ 플래카드가 난무한다. 중학교엔 ‘특목고 ○○명 합격’, 고교엔 ‘△△대 ○○명, XX대 ○○명’ 플래카드다. 합격생 이름까지 죽 나열한다. 중·고교가 나서서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셈이 아닌가. 대학가는 차라리 재기발랄하다. ‘○○합격, 얼굴 빼고 다 이루었네’ ‘기다렸다 ○○, 나와 결혼해줘’ 식이다.



 ‘합격=성공’이란 인식은 ‘학번’에도 나타난다. 내년 대학 신입생은 ‘11학번’이다. 아마 ‘젓가락 학번’으로 불릴지 모르겠다. 미국은 ‘클래스 오브 2015’다. 졸업연도가 학번인 셈으로, 입학보다 졸업에 방점을 찍는다. 우리는 입학이 곧 졸업이니 차이가 없겠지만.



 강원·전남에 이어 서울도 고교에 ‘합격 플래카드’가 사라질 전망이다. 상급학교 진학자와 미진학자, 명문 합격자를 구분함으로써 학력과 학벌을 이유로 학생을 차별한다는 이유다. 조선시대 과거가 양반의 기득권 유지 수단이라면, 현대의 입시도 비슷해졌다. 대치동에 전세 살며 학벌을 추구한다는 ‘대전블루스’도 부(富)를 통한 기득권의 대물림이 아니겠나. 더구나 학원들이 앞다퉈 공적(?)을 홍보하는 마당에 학교가 상찬(賞讚)할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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