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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사제단, 너무 오만하다

중앙일보 2010.12.16 00:07 종합 39면 지면보기



성과 속을 휘젓고 다니면서
과학을 신앙으로 독단하려 하고
신앙을 권력화하려는 게 누구인가
세상에 상식·순리는 숨쉬고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이 4대 강 사업 반대가 교회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히고 북한 현실을 비판하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추기경의 궤변”이라며 반발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제들은 추기경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제들이 추기경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놀랍지만, ‘궤변’이란 말이 묘하다. 아닌 게 아니라 성직자의 궤변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도스토옙스키가 지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가운데 나오는 ‘대심문관’이다. 카라마조프가 세 형제 중 둘째인 이반이 쓴 이 서사시에서 그리스도가 인간세계에 조용히 나타나 기적을 행하자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른다. 대심문관은 그리스도를 체포해 감옥에 가둔 다음 밤에 몰래 찾아가 본심을 털어 놓는다. 바이블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기적을 보이라는 악마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인간이 기적의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인간은 원래 자유보다는 지상의 빵을 원하는 존재다. 이처럼 자유로움을 견뎌낼 수 없는 존재이기에 교회는 빵과 기적, 권력으로 인간을 구속함으로써 평화를 주었는데 뭐가 잘못 되었느냐는 것이 대심문관의 항변이다. 그리스도는 말없이 대심문관의 핏기 없는 입술에 키스를 하며 떠나간다. 결국 인간이 빵과 기적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대심문관의 말은 교회의 권력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궤변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묻는다. 누가 궤변론자인가. 추기경인가, 사제단인가. 독선에 가득 차 ‘사제의 언어감각’조차 잃어버린 사제단을 보면 궤변 여부에 관계없이 참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제단은 언제부터인가 세속적인 일에 신앙의 잣대를 들이대며 우리 사회에서 ‘대심문관’처럼 행세해왔다. 4대 강 문제는 일반인이 얼마든지 자신의 판단과 분별력에 의해 자유롭게 해결할 만한 사안인데, 왜 이에 대한 판단을 신앙의 이름으로 독점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인가. 성(聖)과 속(俗)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창조주의 뜻이나 사도좌의 전통을 거스른다고 위협하고 주일미사에 참여하러 온 신자들에게 일방적으로 4대 강 반대를 교리인 것처럼 강변한 것이 누구인가. 바로 그런 행위가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고 말한 갈릴레이를 창조주의 뜻과 다르다며 박해한 중세 종교재판관의 판박이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가. 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시위와 삭발, 단식, 기자회견 등 권력에 몰입하는 일반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세속화된 행태를 보인 것도 사제단이다. 문제는 정부 정책이 부당하다며 교회의 이름으로 반대하는 과정에서 권력화된 교회가 돼 대심문관의 현대판 공범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땅에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사제단이여! 추기경이 교회 어른으로서 토목과 과학에 관련된 일을 신앙의 일처럼 말하며 권력화하는 교회의 일부 움직임을 경계해 마지않았는데, 왜 ‘당동벌이(黨同伐異)’하는 속된 무리처럼 편을 짜서 그를 비아냥거리며 핍박하는가. 아무리 권위불복종 시대라지만, 그대들은 사제가 되면서 교회 어른에 순명하겠다는 서약을 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은 순명하지 않으면서 신자들에게 자신의 뜻에 순명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또 교회 내 다툼이 있으면 그 안에서 해결해야지, 세속의 법정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했던 바이블의 가르침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사제단에 대해 현대판 대심문관처럼 행동하지 말도록 추기경이 충고를 했다면 마땅히 침묵 속에 그 뜻을 새길 때다. 이런 침묵은 ‘양들의 침묵’처럼 강요된 것이 아니라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의 침묵’처럼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침묵일 터이다.



 더구나 북한의 실상을 통탄해 마지않은 추기경을 ‘시대정신’이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골수 반공주의자’로 낙인찍는 사제단의 태도는 편견과 무지의 극치다. 세상은 어수룩한 것 같아도 상식과 순리가 숨쉬는 법이다. 북한 동포의 삶은 삼척동자라도 알 만큼 참혹한데, 눈물의 계곡에서 탄식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가 어루만지지 않으면 누가 어루만지나. 사제단이 정의를 그토록 외친다면 북한 동포를 위해 촛불을 켜거나 한마디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동토의 왕국인 북한의 참상에 관해 말을 하지 않으면 돌이나 나무라도 벌떡 일어나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바이블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사제단과 동료 사제들이여! 추기경의 충고를 계기로 과학의 일을 신앙의 일이라고 독단하며 현대판 대심문관이 되려는 유혹에서 부디 벗어나라. 이를 위해선 품위 있는 사제의 언행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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