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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ssue &] ‘누워서 노는’ 컴퓨터 시대가 왔다

중앙일보 2010.12.16 00:06 경제 4면 지면보기



소나무 그늘에 비스듬히 누워서
달 보며 술잔 기울이던 신선문화
‘와유성’의 산물 7인치 태블릿PC
슬로 라이프 새 문화 창조할 것



이어령
본사 고문




컴퓨터에서 키보드가 사라졌다. 애플 아이패드와 삼성 갤럭시탭이 태블릿PC의 봇물을 텄다. 생각해보면 안다. 우리가 지금껏 컴퓨터에 매달고 살아온 키보드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물건이었는지. 자그마치 150년 전 피아노 건반을 보고 발명했다는 타자기 키보드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가운데 터치스크린을 비롯해 필기인식·음성인식 등 다양한 입력장치로 무장한 태블릿PC의 출현은 이제 비로소 컴퓨터가 인체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태블릿PC는 스마트폰과 어떻게 다르며 기존의 노트북이나 모바일 컴퓨터와는 또 무엇이 다른가, 그 독자적 장점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아이패드가 대각선 길이 9.7인치(24.7㎝) 스크린인데 비해 갤럭시탭의 그것이 7인치인 것을 보면 이 두 제품 간에도 분명 어떤 개념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스티브 잡스는 갤럭시탭이 출시되기 전 한 인터뷰에서 7인치형 태블릿을 ‘DOA(dead on arrival·출시하자마자 사라지는 것)’라고 폄하했다. 터치 스크린을 조작하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설에는 애플도 처음에는 아이패드를 7인치형으로 개발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7인치의 갤럭시탭에는 분명 9.7인치의 아이패드에 없는 새로운 컨셉트가 내재한 것 같다. 우선 두 태블릿PC를 들고 침대에 누워 한번 시험해 보라. 아이패드가 아무리 다른 기능이나 디자인이 뛰어나다 해도 인터넷을 검색하고 다운받은 전자책을 읽기에는 너무 무겁고 크다. 그런데 7인치 갤럭시탭은 한 손으로 쥐고 침대나 장판 깔린 방에 누워 어떤 자세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키보드 없는 컴퓨터의 특·장점이 백 가지, 천 가지라 해도 첫 손에 꼽을 것은 역시 ‘누워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그 와유성(臥遊性)이다. 태블릿PC가 단순히 스마트폰의 크기를 키운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노트북에서 키보드를 떼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도 와유성에 의해 비로소 구별된다.



 인간의 기본적인 동작은 ‘앉다’ ‘서다’ ‘눕다’의 세 가지 다른 자세에서 나온다. ‘앉다’에서 나온 것이 의자에 앉아서 작업하는 데스크 톱의 거치성(据置性)이요, ‘서다’에서 나온 것이 걸어다니며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의 휴대성(携帶性)이라면, 7인치형 태블릿PC는 누워있는 자세에서 나온 와유성(臥遊性)의 산물이다. 특히 와유성은 소나무 그늘에 비스듬히 누워서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동양의 신선 문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특성이다.



‘일어나다’와 ‘드러눕다’라는 한국말을 보면 7인치형 태블릿PC의 특성이 무엇인지 더욱더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일어서다’와 ‘나가다’를 합쳐서 ‘일어나다’가 되고, ‘들어오다’와 ‘눕다’를 합쳐서 ‘드러눕다’라는 말이 됐다. 일어서면 바로 밖으로 나가는 유목적 생활,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온돌방에 바로 누워 지내는 농경문화적 생활, 이 나가고 들어오고 서고 눕는 양극의 문화를 유연하게 융합시킨 것이 다름 아닌 휴대성과 와유성을 동시에 지닌 한국문화의 특이성이요 바로 7인치형 태블릿PC다.



인간은 태어날 때에도 죽을 때에도 누운 자세다. 그래서 침대를 뜻하는 영어 단어 ‘bed’를 ‘태어나고(birth) 먹고(eat) 죽는다(dead)’는 세 단어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7인치 스크린의 태블릿PC가 뛰어난 휴대성은 물론이고, 키보드의 구속에서 벗어나 누워서도 즐길 수 있는 와유성으로 슬로 라이프(Slow Life)의 새로운 컴퓨터 문화를 창조해 낼 것으로 믿는다.



이어령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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