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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롯데 치킨’과 ‘이마트 피자’

중앙일보 2010.12.14 20:47 종합 38면 지면보기



소비자 권리냐 영세업자 보호냐
논쟁 큰 만큼 사회적 합의 필요
청와대 일방적 개입은 부적절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이마트 피자와 롯데마트 ‘통 큰 치킨’은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발상이 같다. 주춤해진 대형마트 매출을 늘리기 위한 장치로 고안됐다. 시작은 넉 달 전 이마트가 했다. 롯데는 이를 벤치마킹했다. 후발 주자가 늘 그렇듯이 더 센 것, 더 눈길 끄는 것, 더 경쟁력 있는 것을 골랐다. 그게 치킨이다. 첫날 오전에 매진되는 걸 보고 롯데 관계자들은 “옳다구나” 무릎을 쳤음 직하다.



 할인 폭도 비슷하다. 프랜차이즈 업체가 파는 값의 3분의 1 정도다. 이마트 피자는 45㎝짜리 한 판에 1만1500원이다. 동네 가맹점은 33㎝짜리를 약 3만원 안팎에 판다. 닭 한 마리에 롯데의 ‘통 큰 치킨’은 5000원, 동네 치킨업체는 1만6000~1만8000원꼴이다. 배달은 안 해 준다. 많이 파는 것보다 고객을 대형마트로 끌어들이는 게 더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판매 직후 큰 논란과 화제를 부른 것도 같다. 영세상인 보호가 먼저냐, 싼값에 사 먹을 소비자 권리가 먼저냐를 놓고 벌어진 날 선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렇게 닮은꼴이지만 운명은 딴판으로 갈렸다. 이마트 피자는 넉 달째 승승장구, 판매를 늘려 왔다. 반면 롯데 치킨은 일주일 만인 오늘 판매를 접기로 했다. 롯데 측이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사회 여론의 급격한 악화’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청와대가 끼어든 게 못내 부담이 됐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 관계자는 “6개월쯤 준비를 했다. 관련 업계·소비자 반응도 다 따져 봤다. 물량도 최소화했다. 고객 타깃층도 다르게 했다. 영세업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각별히 신경 썼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따졌지만 한 가지, 청와대가 나설 줄은 예상 못 했다”며 “그게 패착이었다”고 덧붙였다.



 롯데로선 혼자만 매를 맞았다며 억울해할 만하다. 이마트 피자도 두 달 전 큰 논란이 있었지만 요즘은 큰 문제없이 굴러간다. 동네 영세업체의 반발, 여론 악화도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었다. 최근엔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 업체들마저 “(이마트 피자와) 고객층이 다르다”며 넘어가는 분위기다. 내심 롯데가 기대한 것도 이런 희망적인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의 트위터 글이 산통을 깼다. 정 수석은 9일 오후 “영세 닭고기 판매점이 울상 지을 만하다”고 글을 올렸다. 롯데가 ‘통 큰 치킨’을 팔기 시작한 바로 그날이다. 원가도 따졌다. ‘생닭 한 마리당 납품가격은 4200원’ ‘기름·밀가루값을 감안하면 원가가 6200원’ ‘결국 닭 한 마리당 1200원 정도 손해 보고 파는 것’이라고 적었다. 소비자들은 즉각 반응했다. ‘미끼상품이다’ ‘밑지고 판다’는 얘기가 퍼져 나갔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불공정 여부를 주시하겠다”고 나섰다. 롯데는 당장 “동반성장에 역행할 의도는 없었다”며 몸을 낮췄다.



 롯데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청와대의 개입이 적절했느냐는 의문이다. 물론 ‘공정사회’에 필이 꽂힌 청와대로선 참견의 유혹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롯데 치킨이나 이마트 피자는 워낙 논쟁적인 사안이다. 보는 눈에 따라 찬반이 크게 갈린다. 유사한 논란이 앞으로 수없이 있을 수 있다. 머리를 맞대고 더 많은 논의를 거쳐야 사회적 합의가 생길 것이다. 애초 청와대가 힘으로 눌러 해결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게다가 확인 안 된 가격으로 업체를 압박한 것은 편파 시비를 부를 수 있다(정 수석이 마리당 4200원이라며 글을 올린 9일 한국계육협회가 고시한 시세에 따르면 1㎏ 안팎 닭 한 마리 가격은 2985원이었다). 방법도 좋지 않다. 트위터에 일단 올리고 보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평소 트위터 소통을 즐기는 정 수석의 스타일을 감안해도 지나친 감이 있다.



 작은 갈등 푸는 맛에 빠져 큰 과제를 놓칠까도 걱정이다. 마침 정 수석이 치킨 논란에 불을 지핀 9일은 아침부터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이 조계종에 사죄하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날이다. 밤에는 야당이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100시간 농성에 들어갔다. 소통이 본업인 정무수석의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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