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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린과 호형호제, 이익 못 주면 관시도 쓸모없다”

중앙일보 2010.12.14 15:05



현대-기아차, 중국 4대 자동차메이커로 키운 화교 설영흥 부회장







현대자동차가 중국에 진출한 것은 2002년 10월이었다. 불과 2개월 만에 조립라인 구축을 끝내더니, 그해 쏘나타 2000대를 ‘뚝딱’ 생산해냈다. 7년 만인 지난해에는 중국 4대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했다. GM·도요타·폴크스바겐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메이커들이 모두 진출한 세계 최대 시장에서 말이다. 올해는 100만 대(기아차 포함) 판매 고지를 돌파했다. ‘셴다이 스피드(現代速度)’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중국사업을 총괄하는 설영흥(薛榮興·65·사진) 부회장은 질주하는 현대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인물이다.



설영흥 부회장은 대만 국적의 화교다. 대만 여권을 갖고 있다. 베이징에 드나들 때에는 여권 대신 중국 정부가 발급한 ‘여행증’을 사용한다. 물론 직장과 생활 터전은 한국에 있다. ‘그는 과연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을까?’ 서울 양재동 그룹 본사에서 그를 만날 때까지 머리에서 맴돌던 의문이다. 사무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설 부회장이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다. 자리를 잡자마자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대만·중국·한국 중 어느 나라에 가장 애착이 가나요.

“옛날 정주영 명예회장이 하신 질문을 또 하는군요. 19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중국팀을 꾸리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명예회장께서 ‘임자는 대만 사람인데 어떻게 공산당 치하 중국과 사업을 할 수 있겠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돈만 벌 수 있다면 어디든 다 갑니다’라고 답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명답이었어요. 화인(華人) 세계에서의 비즈니스는 그런 겁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 식 답변이었다. 그에게 국경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로지 비즈니스만 있을 뿐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다.

그의 가족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청나라 말기다. 무역업을 하던 조부가 서울로 이주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3대(代) 화교인 셈이다. 조부는 큰돈을 벌어 현재 서울시청 광장 앞 프라자호텔 일대의 넓은 땅을 갖고 있었단다. 설 부회장은 현재 한국 중화총상회(화교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부회장께서는 정몽구 회장과 아주 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이인가요.

“무슨 사이라니요? 그는 그룹 오너이고, 나는 피고용자 관계지요. 정 회장은 중국 사업에 관한 한 거의 전권을 줍니다. 순간순간 결정해야 할 게 많은 중국 사업에서 오너의 신뢰는 절대적입니다. 무릇 중국 사업을 하겠다는 기업주라면 현장 책임자에게 전권을 줘야 합니다.”

정 회장과의 사적인 관계를 밝히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40년 넘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고교 시절 즐겨 찾던 중국 음식점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됐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은 99년 그룹 중국사업담당 고문으로 그를 영입했다. 60세 이상 임원들이 세대교체 바람에 시달리고 있지만 설 부회장은 중국 총괄 부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국인과 한국인을 가장 잘 아는 위치에 있는데, 한국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한국 친구들은 ‘빨리빨리’에 강합니다. 일단 일이 정해지면 가장 빠른 길을 찾고, 빠르게 돌파해 나갑니다. 2002년 10월에 중국 정부의 공장설립 인가를 받고, 12월 생산에 들어가는 기업이 세계에 또 있을까요? 빨리빨리는 유연성이 강하다는 뜻도 됩니다. 시장 변화에 생산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바꾸잖아요. 중국인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속도입니다.”



-중국 사업이 거의 ‘질주’ 수준인데, 저력이 무엇입니까.

“시작이 잘된 겁니다. 2002년 파트너였던 베이징자동차(北京氣車)의 경트럭 공장을 인수했습니다. 직원이 4800명쯤 되더군요. 평균 50세가 넘었습니다. 중국 측은 전원 승계를 원했지요. 노(NO), 강하게 거절했습니다. 베이징 시정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4800명의 실업자가 쏟아질 테니까요. ‘여기서 밀리면 합작사업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결국 젊은 사람 일부만 받는 대신 나머지는 모두 퇴직시켰습니다. 퇴직금 지급에 1500만 달러나 들었습니다. 하지만 평균 나이를 25세 정도로 낮췄지요. 그때 밀렸으면 아마 현대식 ‘돌파 경영’은 힘들었을 겁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중국 투자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시작이 전부예요.”



베이징현대는 베이징자동차와 현대가 50대 50으로 투자한 회사다. 동사장(이사회 회장)은 중국 측이, 총경리(CEO)는 한국 측이 맡는다. 동사장은 경영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인 총경리가 경영을 전적으로 책임진다. 설 부회장은 “많은 합작 자동차회사가 경영 마찰로 삐걱거리고 있지만 현대는 다르다”며 “이런 명료한 리더십 체제가 ‘셴다이 스피드’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공장과 비교할 때 중국 현지 직원들의 생산성은 어떤가요.

“베이징 공장 직원 나이는 평균 27세입니다. 젊지요. 신기술을 빨리 받아들입니다. 한국 공장의 경우 한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모델은 기껏해야 2~3개입니다. 그런데 베이징 공장에서는 5개 모델을 동시에 생산합니다. 근로자들의 유연성이 높다는 얘기지요. 노조 반발 때문에 한국에선 못한 5개 모델 동시 생산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베이징공장은 간판 상품 격인 쏘나타를 비롯해 9개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아반떼급 위에둥(悅動)은 올해 23만 대나 팔려 중국에서 ‘베스트셀러 카’에 올랐다. 설 부회장은 ‘현대기아차의 올해 중국 판매량이 대략 105만 대(베이징공장 70만 대, 옌청 기아차 공장 30만 대, 국내 제작·수출 5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매일 아침 베이징으로부터 전날의 생산·판매·재고 상황을 보고 받는다. 그가 보여준 ‘12월 1일 현황 보고’에는 ‘누적 판매량 63만5505대, 재고 6만6995대’로 나와 있었다.



-11월 말 열린 제3공장 기공식에 자칭린(賈慶林) 전국정협 주석이 참석했더군요. 중국 비즈니스는 역시 ‘관시(關系)’입니다.

“자칭린 주석도 오고, 류치(劉淇) 베이징시 서기도 왔습니다. 그들이 왜 왔겠어요? 개인적 친분 때문? 아닙니다. 베이징현대차가 시정부에 한 해 내는 세금이 직·간접으로 약 10억 달러입니다. 가장 많이 세금을 내는 기업이지요. 협력업체들을 포함해 6만5000명의 일자리를 만들고요. ‘돈’이 바로 관시입니다. 그러니까 베이징 시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겁니다. 남들이 ‘셴다이 스피드’라고 하지만, 그거 20년 투자해서 만든 겁니다. 하루 저녁 술 같이 먹었다고 관시가 형성되는 게 아닙니다. 인내하는 마음으로 사심 없이 상대를 도와주면 관시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겁니다.”



설 부회장은 자칭린 정협 주석과는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다. 차기 총리 발탁설이 도는 왕치산(王岐山) 부총리를 비롯해 장더쟝(張德江) 부총리, 리위안차오(李源潮) 당 조직부장, 류윈상(劉云山) 중앙선전부 부장 등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계의 거물들을 망라하는 네트워크다.



-요즘 한·중 간에 갈등이 많은데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중국 측에 ‘대의명분’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현대차가 베이징에 진출할 때 중국은 자동차 분야 해외기업의 투자를 거의 막았습니다. 그들에게 명분을 만들어줘야 했습니다. 중국이 1년 전 가입했던 세계무역기구(WTO)를 내세웠지요. ‘현대차의 투자를 허용한다면 이는 곧 중국이 WTO 가입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임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했지요.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가 그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의명분을 내걸고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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