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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궈 방한 때 ‘차이나 스쿨’ vs ‘북미 라인’ 맞붙었다

중앙일보 2010.12.14 03:03 종합 3면 지면보기
“지금 받아주면 안 됩니다. 최소한 며칠은 기다렸다가 받아줘야 합니다.”


중국 급부상에 힘 세진 차이나 스쿨

 지난달 27일 낮.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긴급 방한 요청을 놓고 청와대·외교부 등 관계부처가 연 회의에 참석한 정부 핵심 당국자의 휴대전화에 이런 메시지가 반복해서 떴다. 북한 핵문제를 담당하는 정부 당국자가 급히 보낸 메시지였다. 이에 앞서 다이빙궈 위원은 이날 오전 “오늘 중 서울을 찾아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싶다”고 정부에 통보했다. 이를 의제로 열린 관계부처 회의에서 외교부 동북아국 일부 관리들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감안해 방한 수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반면 북핵 문제를 담당해온 외교부 북미 라인 관리들은 “다이빙궈는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침묵으로 일관해온 중국의 기존 입장만 반복할 것”이라며 “요청 방식도 일방적이고 무례한 만큼 덥석 받아주면 안 되며 최소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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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부는 다이빙궈 측에 “오늘(27일) 서울에 오더라도 대통령은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답을 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전용기 편으로 서울을 찾은 다이빙궈 위원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만 면담 기회를 얻었다. 그의 이 대통령 예방은 다음날에야 성사됐다. 외교 소식통들은 “청와대가 외교부 북미 라인과 ‘차이나 스쿨’(중국파) 사이에서 일종의 절충안을 택한 것”이라며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발언권이 커져온 ‘차이나 스쿨’과 지금까지 정부의 외교정책 전반을 주도해온 북미 라인 간의 갈등이 가시화된 본격적 사례”라고 전했다.



 다이빙궈 방한 뒤에도 여진은 이어졌다. 북미 라인의 한 관계자는 “다이빙궈 위원은 이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남북간에 전쟁이 나면 안 된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며 “‘우리가 중국에서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만 수억 달러’라는 논리로 중국의 요구라면 가급적 들어주자는 주장이 있는데 대중 외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차이나 스쿨’의 한 관리는 “다이빙궈가 이번 방한을 통해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듣고 간 만큼 향후 중국의 대북 정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이빙궈의 방한 수용이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 내의 ‘차이나 스쿨’은 중국 공관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외교부와 청와대 관리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미 동맹이 우리 외교의 근간”이라는 입장이 분명하지만, “동맹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국익을 위한 수단이라는 객관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가이자 G2의 한 축으로 떠오른 중국의 위상을 감안해 보다 유연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현재 외교부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북미국은 3개 과에 26명이 배치된 반면 중국 담당 인력은 동북아국 1개 과(중국과) 8명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중 외교 강화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는 동북아국에 중국 업무 담당과가 한 개 신설되면서 인원도 2배로 늘어난다. 예산도 올해 3억9000만원에서 30억원으로 7.7배로 늘어난다.



15일에는 외교안보연구원에 사상 처음으로 특정국가(중국)명이 들어간 ‘중국센터’가 개소식을 한다. 한반도를 담당하는 미국 관리들은 “한국 정부 내 ‘차이나 스쿨’이 어떤 사람들이냐” “그들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라며 한국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등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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