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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골프 상금왕 시샘하는 일본

중앙일보 2010.12.14 00:02 종합 38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 특파원




지난 5일 한국의 골퍼 김경태 선수가 올해 일본골프투어 상금왕을 놓고 벌인 시즌 마지막 시합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김경태를 마지막까지 추격한 일본 선수는 이시카와 료와 이케다 유타. 이 중 이시카와는 현재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다. 출연 중인 TV광고가 10개가 넘고, 언론에서는 그를 ‘료 왕자님’이라 부를 정도다. 결과는 김경태의 통쾌한 승리. 절로 환호가 튀어나왔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일본인들이 시샘할까”란 걱정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주 앞서 끝난 여자골프투어에서도 한국의 안선주 선수가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상금왕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나운서의 클로징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오늘 김경태 선수가 상금왕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1987년 일본계 미국인 데이비드 이시이를 제외하면 최초의 외국인입니다. 그러나 일본 골프선수회 대표 후카보리 게이치로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그는 외국인이지만 또한 우리 동료입니다. 팬 여러분들도 그의 상금왕 획득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가질 못했다. 일주일이 채 안 돼 ‘한국 견제론’이 언론을 통해 거론되기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가 우승하면 주최 측 기업의 사장이 출석하는 시상식 전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바꿔 버린다” “그동안 일본인 스타 선수들이 활약하며 흥행에도 성공해 왔는데 그 비즈니스모델이 흔들리고 있다”는 푸념들이 나온다. 한 유명 평론가는 TV에서 “삼성에 1등을 빼앗기더니 이제는 스포츠에서도 밀리고 있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자국 선수들이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야 어느 나라고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다. 난 일본이 그런 걸 수용 가능한 나라라 믿었다. 그러나 중국에 추월당하고 한국에 쫓기는 신세가 초조함을 자극한 것일까. 밖을 보지 못하고 손이 안으로만 굽는 고립 현상이 요즘 들어 두드러져 보인다. 스포츠만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 업체들은 각종 기업활동에서 텃세와 견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외국기업들이 아시아본부를 일본에서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요즘 입만 열면 ‘개국(開國)’을 외친다. 한국에 뒤진 자유무역협정(FTA)을 만회하기 위해 미국 등 9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이뤄내겠다고 한다. 그래서 TPP를 제2의 흑선(黑船)이라 부른다. 흑선은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끌고 와 일본을 개항시킨 배다. 이 배가 일본을 개국시켜 근대화로 이끌었듯 TPP를 통해 일본을 다시 한번 ‘열린 나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골프 결과 하나 놓고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달고, 내 것만 챙기고 지키려는 근시안으로는 다가오던 흑선도 되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일본에 정말 필요한 건 “아시아 1등을 지킨다”는 생각보다 “더 이상 아시아 1등이 아니다”란 자각이 아닐까. 그래야만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다른 나라에 흔쾌히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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