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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거가대교

중앙일보 2010.12.14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1994년 당시 김혁규 경남지사는 기자들에게 거창한 계획을 하나 발표했다. “경남 거제도와 부산시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공무원들조차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1년 후 있을 첫 직선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염두에 둔 장밋빛 애드벌룬이라고 외면했다. 1조원이 넘는 사업비가 거론되자 넋두리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얼마 후 거가대교 건설이 민자유치 대상 사업으로 정부에서 선정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부산·경남 광역권의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재원 조달이 일단 벽에 부딪혔다. 해상 구간 전체를 교량으로 건설하려는 계획은 해군의 반발을 사면서 표류하는 듯했다. 해군은 거가대교가 모항(母港)인 진해항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교량이 폭파되거나 붕괴됐을 경우 진해항 항로가 봉쇄돼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량이 건설되면 출입하는 함정 등 군사시설이 그대로 노출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신 전 구간을 바닥 깊숙이 터널로 지으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해저 침매(沈埋)터널과 사장교(斜張橋)란 아이디어는 이 와중에서 나왔다. 고심하던 경남도와 부산시는 가덕도~대죽도 구간 3.7㎞는 바닷속의 침매터널로, 나머지는 사장교를 세운다는 방안을 마련했다. 우여곡절을 겪던 사업은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 만인 2004년 12월 첫 삽을 떴다.



 침매터널은 가장 어려운 공사였다. 길이 180m, 높이 9.97m, 너비 26.5m 크기의 콘크리트 구조물(함체)를 만드는 것도, 이 함체를 수심 48m의 바닷속에 설치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었다. 높은 파도와 바람, 조류가 심한 외해(外海)에 공사가 이뤄진다는 점도 도전이었다. 지난 9월 함체 18개를 이은 세계 최대의 침매터널이 완공됐다. 어제는 거가대교가 마침내 개통됐다. 거제도에서 통영이나 창원을 거치지 않고 부산까지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가덕도에는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1866년) 직후 세운 척화비(斥和碑)가 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며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라고 했다. 거제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해 첫 승리를 올린 옥포가 있다. 거제도와 가덕도가 외국을 상대로 남해안 시대를 여는 전초기지로 탈바꿈한다니 느낌이 새롭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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