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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천사 ‘추캥’ 뒤엔 마음의 스승 있었네

중앙일보 2010.12.11 00:37 종합 30면 지면보기



‘소나무 선생님’ 불리는 소병진씨
10여 년 전 오장은 등과 인연
부상 선수들 몸·마음 치료
베푸는 축구인 길러내



소나무 선생님(왼쪽)이 지리산 그의 집에서 오장은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함양=이정찬 기자]





설기현·김재성(이상 포항), 오장은(울산) 등 K-리그 스타들이 출전한 ‘축구로 만드는 행복(추캥)’ 자선경기가 9일 경남 함양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본지 12월 8일자 30면> 협찬 없이 선수들 스스로 기획·구성해 의미가 컸던 경기. 인구 4만 명의 조용한 도시 함양에 행복이 번졌다.



 추캥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 대신 ‘소나무 선생님’으로 불리는 소병진씨는 지리산에서 은거하며 뜸과 마사지 등 민간요법을 연구하고 있다.



 추캥의 출발은 10여 년 전 소나무 선생님과 초등학생 오장은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귀포초등학교에 다니던 오장은은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했지만 심한 몸살로 뛰는 건 물론 제대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서울 숭덕초등학교 학생을 치료하던 소나무 선생님은 오장은에게 뜸을 떠 주고 배를 쓸어줬다. 거짓말처럼 툭툭 털고 일어난 오장은은 다음날 경기에서 골까지 넣었다. 오장은은 조심스러워하며 “의심하는 사람이 더 많다. 쉽게 설명하면 기(氣)치료라고 해야 할까. 서로 믿는 가운데 치료가 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 뒤로 오장은은 틈만 나면 지리산에 있는 선생님의 거처를 찾았다. 그리고 청소년대표팀, 베이징올림픽팀, A대표팀에 차례로 선발되며 상승가도를 달렸다. 오장은은 초등학교 입학 전 사고로 왼쪽 엄지와 검지 발가락이 절단된 상태다. 그는 “발가락이 조금만 더 짧았더라면 제대로 걸어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상태로 축구를 하다 보니 몸의 균형이 무너져 눈에 띄지 않는 부상이 많았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되레 “장은이는 나의 친구 같은 스승”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겐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학생 장은이가 사력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소문을 듣고, 지인의 소개로 소나무 선생님을 찾는 선수들이 하나둘 늘었다. 박건하 수원 코치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지리산까지 찾아온 선수들에게 그는 부상만 치료해 주는 게 아니라 예의를 가르친다. 인사하는 자세부터 식탁예절까지.



 자선경기가 끝난 다음날에도 선생님 집에는 오장은을 비롯해 중학교 2학년까지 모두 7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기상-청소-아침운동-점심운동-저녁운동-치료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이들은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중학생 정인권(14)군은 학교에서 말썽피운 것을 들켜 벌을 받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물에 20분 동안 발을 담그고 반성하는 것. 그럼에도 정군은 “집보다 이곳이 좋고 마음이 편하다. 빨리 성공해서 선생님께 보답하고 싶다”며 웃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충(忠)과 효(孝)다. 그는 “축구 선수에게도 논어 이상의 좋은 교재는 없다”고 했다.



 1박2일간 머물렀던 지리산을 떠나며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가 멀리 산자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만난 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 친구들이 성장해 또 다른 후배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나는 가르치는 게 없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축구로 인생을 깨우치는 선수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함양=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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