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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4-2

중앙일보 2010.12.11 00:27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그럼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거요?”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인간이여, 그대는 이 세상이란 거대한 도시의 시민으로 살아왔다. 거기서 살아온 기간이 십 년이든 백 년이든 그게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겠는가. 이 세상의 법은 그대에게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평등하다. 그런데도 그대는 어찌하여 지금 떠나라고 한다고 해서 불만을 품는가.



 지금 그대를 이 세상에서 몰아내려고 하는 이는 폭군도 아니고 부당한 재판관도 아니다. 그대를 이 세상으로 데려왔던 자연이다. 자연은 배우를 무대 위로 불러 썼다가 다시 무대 밖으로 나가게 하는 연출가와 다르지 않다.



 저는 5막의 연극에서 아직 3막까지밖에 출연하지 못했습니다 - 그대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은가. 하지만 인생은 3막만으로 완결되는 연극일 수도 있다. 연극이 언제 끝날지를 결정하는 이는 당신을 지금 내보내려고 하는 자연이다. 이만 만족하고 물러나라. 그러면 그대를 떠나보내는 자연도 미소로 그대를 배웅할 것이다….



 지난 날 나는 그 음울한 철인왕(哲人王)이 말한 자연을 물화(物化)된 신으로 해석해 연출이란 신의 영역 일부를 모방하는 작업이라 여기며 우쭐거려 왔다. 그런 내게 인생은 어김없이 한 막의 연극이었고, 실제로 나는 젊은 날의 대부분을 연극과 삶을 혼동하며 보냈다. 특히 아내와 결혼할 무렵에는 그런 혼동이 더욱 심해, 그때 어쩌면 나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갈 아내를 구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의 내가 출연하고 있는 연극을 빛내줄 대역을 고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삶을 연극과 혼동하는 정도는 나보다 아내가 더 심했다. 그녀가 나보다 훨씬 일찍 무대에서의 성공을 맛보았다던가, 그 성취의 세속적이고 뒤틀린 보상으로 다가온 화려한 초혼과 오래 가지 못한 무대 밖의 행복, 그리고 몇 년의 죽음과 같은 침체와 힘들었던 배우로서의 재기 과정은 그녀에게 삶을 연극과 혼동할 권리를 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삶을 곧 연극으로 환치하는 그녀의 드라마투르기는 나보다 훨씬 철저한 동일시로 나타났다. 곧 그녀의 삶과 연극에서는 원관념과 상징 또는 비유의 구분이 없다. 곧 삶의 어떤 측면을 상징하거나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수단 또는 통로로서의 연극이란 개념은 전혀 없고, 삶이 곧 연극이란 동일시만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동일시 과정은 나와 결혼해 사는 동안에 더욱 강화되어 나중에는 배우로서의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까지도 연기의 일부로 끌어들여 삶의 무대를 온전하게 장악하고 싶어 했다.



 따라서 나는 배우자가 아니라 우리 결혼생활에서 아내 역을 맡을 배우와 결혼한 것이었고, 스스로는 원관념이 되는 삶을 함께할 남편이기보다는 우리 결혼을 성공적인 연극으로 이끄는 연출자이기를 바란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우리 사이에는 애초부터 삶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배우와 연출가 또는 배우와 배우, 그리고 나중에는 연출가와 연출가의 만남이 되어 가장과 주부 또는 남편과 아내의 삶을 공연했을 뿐이었던 듯싶다.



 하기야 내게도 연기가 되어버린 생활, 실감 안 나는 삶이 전혀 자각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공연 그 자체이거나 공연 앞뒤에 따른 준비와 뒤처리에 골몰할 때, 삶은 그 사이에 끼인 최소한의 생존활동으로만 잠재하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거기서 해방되어 삶의 실재감, 그 풋풋함과 온기에 나를 풀어놓고 싶어 돌아온 집에서 또 다른 무대를 만나고 거기서 다시 연기를 계속해야 하게 되면, 그게 비록 내 스스로 선택한 삶의 양태였다 해도 당황스럽고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결혼하고 일 년쯤 지나 처음으로 그런 기분에 빠져든 나는 몇 번이나 자제하다가 어느 날 마침내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이거 우리 집 맞아? 그리고 우리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내가 그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그녀가 무슨 상념인가로 몽롱한, 그래서 때로는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맞겠죠. 산그리매 아파트 101동 307호 아녔어요? 그런데 왜요?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것 같은데요?”



 “글쎄, 어째 내 집으로 돌아온 것 같지 않고, 위치만 극단 연습실에서 부속 기숙사로 옮겨앉은 단원 같아. 아니, 저쪽에서 한 막 끝내고 숨도 못 돌린 채 다음 공연을 하러 새 무대에 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받았다.



 “바로 보신 거 아니에요? 삶이 바로 한 막 연극이라면서요?”



 “그럼 내 역은 언제 끝나고, 푸근하고 질펀한 삶 속을 딩굴면서 쉬어보는 거지? 부황하고 공허한 무대 위에서의 관념이 아니라 실재감으로 차 있는 삶. 부드러운 살갗과 따스한 체온을 느끼는 사람들과의 접촉과 소통….”



 “그런 게 어딨어요? 실재감으로 차 있는 삶 같은 거 따로 없어요. 선생님 말마따나 우리는 인생에서 5막 중에 3막째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에요. 언제든지 연출이 무대에서 내려가야 한다면 군소리 없이 내려가야 하는.”



 “그건 비유나 상징이지. 이데아 또는 실재로서의 삶을 원관념으로 하는.”



 그러자 그녀가 다시 피식 웃으면서 너무 공허해서 나른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로 받았다.



 “세상을 너무 여러 겹으로 둘러치지 마세요. 벗겨봐야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양파예요. 안에 뭐가 따로 있지, 하면서 벗겨내 버린 그 껍질이 바로 양파의 본질이라고요.”



 여러 해 그녀와 함께 지낸 뒤에야 나는 그런 그녀의 말투가 감당하기 어려운, 또는 계속하기 귀찮은 논쟁을 서둘러 끝낼 때 그녀가 흔히 빌려 쓰는 논법이란 것을 알았다. 유학 시절에 감명을 준 어느 외국인 교수가 즐겨 썼다는.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우리 결혼생활에 일기 시작한 회의를 한순간에 털어내버렸을 만큼 신선하게 들렸다.



 그러다가 다시 내가 무대에서 무대로 떠돌고 있다는 느낌으로 고단하고 황폐한 심경이 되어 그걸 그녀에게 토로한 것은 그로부터 한 이 년 뒤였다. 그 사이 겉으로는 중견이란 수식어까지 덧붙는 연출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 기분은 이름 없는 연출 지망생으로 세상을 겉돌고 있는 것 같아 우울해진 어느 날 나는 문득 이 년 전에 있었던 아내와의 논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 그런 기분이 실재감 없는 삶 때문이라는 의심이 다시 들어 다시 한번 아내와 그 일을 얘기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날 술 생각이 나서 스스로 차린 술상도 우리 논의를 불 지피는 데 한몫을 크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술은 우리 냉장고가 비면 기계적으로 채워두는 맥주였고, 안주는 들어올 때 아파트 단지 수퍼에서 사온 튀김과 통조림이 전부였다. 잔과 접시를 챙기기도 귀찮아 거실 탁자 위에 술병과 안주 봉지를 그대로 풀어놓고 병째 마시는데, 아내가 샤워를 들어가며 핀잔처럼 말했다.



 “그럴 거면 아예 밖에서 마시고 오지 그랬어요? 분위기도 없고 안주도 신통찮으면서 집안만 지저분해지고.”



 “술집에서 마시는 술, 요즘은 왠지 요란스럽기만 하고 귀찮아지네. 괜찮아. 그냥 한잔 마실 건데 뭐.”



 나는 변명처럼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맥주병을 비웠으나 가슴속은 그때부터 스산한 바람이 불어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날따라 오래 샤워를 한 아내가 다시 공들여 밤 화장을 하고 나오는 동안에 함부로 마신 술과 그만큼 거칠게 헝클어진 상념도 우리의 논의를 처음부터 비틀어 놓았다.



 “이봐요. 우리 이렇게 사는 게 맞아?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게 이런 거였어?”



 내 눈에는 또 다른 무대의상 같은 잠옷 차림에 방금 외출이라도 할 듯 화사한 화장을 한 아내가 거실 탁자 맞은편 소파에 앉자마자 내가 빈정거리듯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눈길이 반짝 날카롭게 빛났다가 다시 사그라지며 교양과 절제를 드러내는 눈웃음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사는 게 어떤 건데요? 또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고요?”



 “왜 만날 우리는 유랑극단 배우 같아? 왜 우리의 생활이 없어? 삶이 없고 연극만 있느냐고? 그저 무대에서 무대로 옮아다니며 삶의 그림자만 흉내내고 있느냐고?”



 그러자 아내의 눈길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어 예상하고 있었던 질문을 받기라도 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받았다.



 “아, 또 그 얘긴가요? 나는 다시 그 얘기를 꺼내지 않으시기에 잊으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아직은 무엇이 불만스러운지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겠네요. 무엇이지요? 우리가 어떻게 달라져야 바로 사는 것이고, 잘 사는 부부인지 말예요.”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준비된 말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술 때문인지, 전과 다르게 차분하고 실제적인 그녀의 대응 때문인지 갑자기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슨 묘수라도 찾은 것처럼 반문으로 받아쳤다.



 “그럼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거요? 우리가 세상 부부들처럼 진정한 삶을 함께하고 있다는 거요?”



 그러자 이제는 완연히 싸늘해진 얼굴로 받아치듯 말했다.



 “아 좋아요. 말해주시지 않아도 이젠 알겠네요. 이거지요? 유랑극단, 삶이 없고 연극만 있다는 거 모두.”



 그러고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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