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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율곡의 구국 충고를 가슴에 새기라

중앙일보 2010.12.11 00:13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율곡 이이가 쓴 『석담일기(石潭日記)』를 보면 임금 선조가 짜증을 부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말하지요. “우리나라의 일은 참으로 하기 어렵다. 한 폐단을 고치려 하면 또 한 폐단이 생겨 폐단을 없애지 못하고 도리어 해로움만 더하게 되니 수족을 놀릴 틈이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래서 더 손발이 수고로운 건 4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우리의 색깔인가 봅니다. 그만큼 엔트로피가 높다는 뜻도 될 테니 밖으로 내뿜으면 엄청난 창발이 이뤄질 텐데, 그러지 못하고 쉬이 안에서 터져 우리끼리 편가르고 멱살 잡을 때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선조의 불평은 임금의 무기력증을 꾸짖는 신하들의 잔소리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짜증에 앞서 율곡이 이런 지적을 하지요. “전하께서 겸손과 사양의 태도로 말씀하시니 신은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겸양에는 두 가지가 있사오니, 즉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것은 선(善)의 근본이 되지만 사양하고 핑계 삼아 떨치고 일어날 뜻이 없는 겸양은 오히려 병통이 됩니다.”



 『석담일기』는 명종 20년(1565)에서부터 선조 14년(1581)까지의 정사를 일기체로 서술한 책인데, 선조는 끝내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태도를 고치지 않아 우리의 율곡을 탄식하게 합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임금이 짜증날 만도 합니다. 선조 때가 어느 땝니까. 사색당파의 싹이 트고 붕당정치의 막이 열리던 때 아닙니까. 신하들이 국익 아닌 사당(私黨)의 이익을 좇아 나뉘어 한쪽에서는 하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안 된다고 하니 임금 노릇 하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거기에 율곡 같은 충신은 또 나라를 위해 잔소리를 합니다. 임금의 짜증이 더하겠지만 그렇다고 가만있을 율곡이 아니지요. 짜증에 대한 대답이 이렇습니다. “그러한 까닭이 있습니다. 기강이 서지 않고 인심이 풀어졌으며 구차하게 벼슬 자리만 채운 사람이 많아서 한갓 먹는 것만 알고 국사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폐를 고치려는 명령을 내려도 실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고의로 폐단을 생기게 하니 공적이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위정자들이 이러하니 나라에 역질(疫疾)이 돌아도 무대책이요, 왜군의 침공에 대비해 성곽을 쌓고 보수하라 명해도 오히려 지방 수령들이 민폐를 만들지 말라는 장계나 올리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임금이 자포자기의 심정이 될 듯도 하지 않겠어요.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지요.



 어쩌면 이렇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전방에선 언제 북한의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고, 후방에서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농민들 가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데도 국회에서는 선량들끼리 붕당의 구령에 맞춰 피 튀기는 주먹질을 하고 의사봉을 던져 뒤통수를 깹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정치부의 한 후배는 “의회폭력도 압축성장을 하더라”고 혀를 찼습니다. 의회폭력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18대 국회만큼 처절한 적은 없었다는 얘기지요.



 사색당파를 무색하게 하는 보수-진보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까닭입니다. 의회 본연의 임무인 대화와 타협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합니다. 야당은 막무가내의 정수를, 여당은 정치력 부재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왜 부잣집 아이들까지 없는 국고 털어서 급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4대강 사업이 뭐 숨 넘어 가는 일이라고 그리 밀어붙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까짓 것들이 왜 한 걸음씩 양보해서 타협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선조보다 100배쯤 에너지 넘치는 대통령을 갖고 있지만 그 에너지가 갈등 해소에 쓰이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율곡은 일기 쓰기를 끝낼 무렵 임금에게 충언합니다. “선입견을 가지지 마시옵고 시무(時務)를 아는 사람과 더불어 폐단을 없앨 방책을 상의하시되, 개혁만을 주로 하지도 마시옵고 보수만을 주로 하지도 마시오며….”



 율곡은 이어 “그러나 임금은 즐겨 따르지 않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당쟁의 늪에 깊이 빠진 선조로서는 이미 따를 수 없는 충고였는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의 위정자들이 율곡의 충고를 따르길 기대하는 건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정치를 파워게임으로만 보는 핏발 선 눈으론 백성들이 보일 리 만무하니까요.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여러분들이 마음에 새기십시오. 난세에도 뜻을 어지럽히지 않은 충신의 고언을 여러분께 들려 드리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세대에서 그것이 실천돼 세상을 바꿔 나간다면 율곡도 찡그린 낯을 펴고 호탕하게 웃을 겁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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