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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英 학자금 제도, 그 정도도 부럽다

중앙일보 2010.12.11 00:10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상언
파리 특파원




남의 나라에서는 불만을 사는 일이 한국에서는 “그 정도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대학 등록금 제도가 그중 하나일 듯하다.



 영국에서는 연일 대학생·고교생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집권당 본부가 있는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 차량을 부수더니, 9일에는 정책 결정에 권한이 없는 찰스 왕세자가 탄 승용차에 쓰레기를 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시위의 원인은 정부가 연간 수업료 상한선을 3290 파운드(590만원)에서 9000파운드로 올린 데에 있다. 정부의 대학 지원금 삭감에 따른 조치다. 상한 조정으로 평균 수업료는 7500파운드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영국 대학생들은 학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는지를 살펴보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한국의 학생·학부모가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할 정도로 학비 제도가 잘돼 있는 것이다.



 영국 대학생은 누구나 원하면 수업료와 일정 수준의 생활비를 정부에서 융자 받을 수 있다. 가정의 소득이나 성적과 관련한 제한이 없다. 융자금은 졸업 뒤 연간 소득이 2만1000 파운드(3800만원)가 넘을 때부터 갚기 시작한다. 그 이상을 벌다가 소득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면 상환이 중단된다. 매달 내는 상환금은 연 소득에서 2만1000 파운드를 뺀 금액의 9%를 12분의 1로 나눈 것이다. 예를 들어 연봉이 2만5000 파운드면 4000 파운드의 9%인 360 파운드를 12로 나눈 30 파운드(5만4000원)를 매달 내면 된다. 이렇게 해 빌린 돈과 이자를 다 갚으면 상환이 끝난다. 소득이 적어 30년 동안 다 갚지 못하면 나머지는 탕감된다.



 영국 정부는 수업료 상한선을 올리며 상환 면제 기준 연간 소득을 1만5000 파운드에서 2만1000 파운드로 올리고, 이자율을 졸업 뒤의 소득 수준에 따라 0∼3%로 차등화했다.



 영국 대학 등록금이 7500 파운드(1350만원) 정도로 올라도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한국보다 가계의 부담이 적다. 한국의 내년도 연간 수업료 평균은 700만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9830 달러로 4만1520 달러인 영국의 절반에 못 미친다.



 지난달 참여연대 등이 발표한 한국 대학생 여론조사를 보니 88%가 등록금 문제로 심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중 29%가 “부모가 힘들어하는 게 원인”이라고 답했다. 59%는 등록금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힘입어 올해 한국에서도 영국과 비슷한 학자금 상환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부모의 소득이나 성적에 따른 제약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되는 학생이 많고 이자율도 높아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요사이 초등학교 무상급식 논쟁이 한창이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와 대학 학비 때문에 허리가 휘는데 멀쩡한 옆구리를 주물러 주겠다고 나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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