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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너무 취하지 말자

중앙일보 2010.12.11 00:04 종합 35면 지면보기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



 참 오래전 시절의 풍경이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시인과 같은 경험을 했든 안 했든 코끝이 시큰거리는 정서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도 삶이 바싹 마른 배추잎처럼 버석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오늘날 G20을 이끄는 의장국이 되었다. 초고속, 최단기간에 경제부흥을 일으킨 나라로서 우리의 개발모델은 제3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오바마도 외쳐댔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성공한 브랜드다.



 그러나 성공해 본 사람이나 브랜드는 성공하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기가 더 어려운 것이란 걸 안다. 성공이라는 위치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력에는 ‘성공에 흥취하지 않는 긴장감’이 포함된다. 이것을 잊으면 오만해지고 결국 실수하게 된다.



 1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코닥은 필름과 카메라의 세계적인 브랜드였다. 이미 30년 전에 미국 내에서 필름시장의 90%를, 카메라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코닥은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도 들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추측하다시피 디지털 카메라가 그 이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카를 개발했다. 하지만 성공 브랜드로서의 오만은 ‘디카란 컬러프린터일 뿐’이라며 장난감 정도로 치부해 버렸다. 오히려 앞으로 커질 중국시장을 고려해 최고의 필름 브랜드답게 고감도 필름 생산에 더 주력했다. 후에 디카 생산에 뛰어들었으나 경영 악화로 결국 필름공장을 폐쇄하고 2만7000명을 감원했다. 그들은 찬밥이 되어 세상에 버려진 것이다. 코닥의 CEO 안토니오 페레스는 이제 시장이 포화 상태인 디카 사업까지 접고 살아남기 위해 제3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성공의 기슭에 닿게 해준 뗏목을 기슭에서도 어깨에 지고 가서는 안 된다. 기슭에서는 근력을 키운 다리와 새로운 땅을 극복할 정보와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리더는 새로운 세상의 기슭에 닿기 전에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분단국가인 우리의 사정은 자만할 여유가 없다. 우리의 안보불안을 정치도구로 쓰는 북쪽이 있는 한, 경기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다른 쪽이 있는 한 우리는 여유로울 수 없다. 세계의 이목은 확대경을 대고 우리와 관련된 역학관계를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후계구도 정착과 중국과의 이해관계를 놓고 계속 우리를 자극할 수 있는 북한을, 또한 이미 6·25 전쟁으로 경제적 혜택을 입은 미국이나 일본의 새로운 혜택을 점치고 있을 법하다. 그런데 국가경영을 위해, 안보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 줄, 우리가 뽑은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코피까지 터지며 1박2일 싸웠던 여야…그래도 챙길 건 다 챙겼다’(중앙일보 12월 9일자)란 제하의 기사는 새해 예산안 통과 과정의 국회 난투극을 전한 것이다. 2012년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은 확실하게 챙겼다는 것인가. 예산문제 중요하다. 그러나 연평도 사건은 코스피지수가 약간 휘청였을 뿐이고, 국방장관을 교체했으며, 피란민이 된 주민들은 지역구인 인천에서 맡으면 된 것인가. 안보가 초긴장인 상태에서 보온병 실언에 폭탄주 발언까지, 참 기막힌 풍경이다. 우리의 불안이 저들의 이용거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로이터가 전 세계로 전송한 난투극 따위를 만들어 줘선 안 된다. 어제까지 치고받았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않은가. 꽁꽁 뭉쳐 단결해서 아무도 우리를 흔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애초에 상대가 장난질할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맡아야 한다. 연평도 주민들이 찬밥처럼 피란처에 남겨졌다고, 미래가 어둡고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다 같이 정신 차리고 힘을 모아야 한다.



 취하면 흔들린다. 우리의 미래까지도. 대한민국이 성공한 국가 브랜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생업을 위해 수고한 우리를 위안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취할 때가 아니다.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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