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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대북감청부대장 지낸 한철용 예비역 소장

중앙일보 2010.12.11 00:03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대북감청부대인 5679정보부대 부대장을 지낸 한철용(韓哲鏞·64) 예비역 소장. 그는 4월 초 자신이 쓴 책 『진실은 하나』에서 북한은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 5도를 직접 공격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는 요즘 연평도 포격 전 ‘결정적 징후’가 있었는데도 정보 판단에 실패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7일 j 가 한 장군을 만나 그가 본 연평도 포격 사건과 대북 감청의 세계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한 장군은 2002년 제2 연평해전 직후 국회 국방위 국감 때 증인으로 출석해 도발 첩보를 군 수뇌부가 묵살했다는 그날의 ‘진실’을 발설한 게 문제가 돼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전역당했다. 그는 2005년 국방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다.


“1973년 북한 GP 묵사발냈을 때, 그들도 겁먹었다”

글=고성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북한이 서해 5도를 직접 공격할 거라고 예측하셨더군요.



 “천안함 사건 직후 청와대에서 군 원로 20명을 초청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참석한 몇몇 장군에게 ‘북한의 다음 타깃은 서해 5도가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럴 리 있느냐고 하더군요. 얼마 전 해병대 병사들 영결식에 갔더니 한 해군 출신 장군이 ‘정보를 해서 그런지 한 장군 예측이 맞았다’고 하더군요.”



●결정적 징후는 뭡니까?



 “연평도 포격 직전 NLL 인근에 미그-23 5대가 떴어요. 군 정보당국도 알았고요. 미그-23, 미그-29는 평양 인근 북창 비행장에 배치된 북한군 최신예 전투기입니다. 한·미 연합 공군 전력이 평양을 폭격할 때를 대비한 평양 방어가 주 임무입니다. 한마디로 김정일을 지키는 전투기입니다. 그런 전투기가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NLL 인근까지 접근한 것은 특이동향으로 판단해야지요.”



●특이동향일 순 있지만 그것이 곧 도발 징후라고 판단하는 건 좀 ….



 “일반인은 모르겠지만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분석해 내야 합니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직전에도 미그-23 2대가 NLL인근까지 내려와 초계비행을 했어요. 또 천안함 사건 전에도 미그-29로 추정되는 전투기가 한밤중에 NLL 인근까지 내려온 것이 군 정보당국에 포착됐고요. 도발 직전 항상 북한은 최신예 미그기를 내려보냈습니다.”



●왜 매번 도발 직전에 미그기들이 나타나는 겁니까?



 “우리 공군의 폭격에 대비하는 거죠. 보통 2대가 초계비행을 하는데 이번에는 5대나 내려왔어요. 육상 포격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해서 5대나 보낸 것 같습니다.”



●군 정보당국이 이 사실을 좀 더 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 거네요.



 “북한군에 대해서는 무한한 의구심을 가져야 합니다. 첩보 하나라도 물고 늘어져서 연구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한 것 같아요. 그간엔 위에 보고를 해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 정보를 등한시한 측면도 있고요.”



●연평도 사건 당시 우리 해병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북한군 포격에 우리 해병대가 반격한 것은 훈장감입니다. 원래 대응사격이라는 게 쌩쌩한 부대가 하는 것이지 불시에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 부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북한 영토에 포탄을 날린 사실만으로도 포대장과 병사들에게 훈장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상부는 실패했어요. F-15K로 해안포 기지를 타격했어야죠.”



●그러다 공중전이 벌어질 수도 있고 더 확전될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확전으로 인한 전면전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F-15K는 SLAM-ER이라는 사거리 280km의 정밀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어요. NLL 인근까지 가서 타격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산이나 보령 앞바다에서 좌표 찍고 때리면 되는 겁니다. 미그기들은 우리 전투기를 보지도 못해서 공중전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기회를 놓친 거예요.”



●그렇지만 실제로 전투기 폭격 명령을 내린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닐 것 같습니다.



 “1973년에 북한군이 우리 측 3사단 GP에 기관총 공격을 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사단장이던 박정인 장군이 포병까지 동원해 북측 GP를 묵사발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었죠. 하지만 확전되지 않았어요. 북한군도 더 집적거리지 못했죠. 의외로 북한군도 겁이 많습니다. 기백 있는 장군이 아쉽습니다.”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면 평양도 무사하게 둘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평양을 타격해서 민간인들이 죽어나간다고 김정일이가 눈 하나 깜짝 하겠어요? 아닙니다. 정보 하는 입장에서 보면 때리더라도 적에게 심리적 공황을 불러일으킬 만한 곳을 타격하는 쪽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심리적 공황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곳이 있습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런 곳이 분명 있습니다. 김정일이 가장 아끼면서 공격받았을 때 북한 수뇌부가 아파할 곳이 어디겠습니까? 답은 있지만 내 입으로 말하진 않겠습니다.”



●북한군 정보는 어떻게 알아냅니까.



 “무선감청도 하고, U2기 같은 정찰기나 인공위성을 통한 영상정보도 받습니다.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라서 인간 정보를 이용하는 건 대단히 제한적이고요.”



●북한군이 유선으로 교신하면 정보 파악이 불가능한 겁니까?



 “북한은 지하에 광케이블을 모두 깔아놓았다더군요. 기지에서 항공기나 함정과 연락을 취할 때는 무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잡아낼 수 있지만 유선을 이용하면 알 수가 없습니다. 김정일 관련 동향은 유선도 아닌 필답으로 오고 가기 때문에 잡아내기가 더 어렵지요.”



●감청한 것도 모두 암호화돼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암호를 푸는 전문가 조직이 있습니다. 수학자들이 동원됩니다. 간혹 운이 좋아 암호가 아닌 평문(일상문)으로 날릴 때 한 단어만 잡아내도 그간에 막혔던 부분이 탁 풀리기도 합니다. 한번 날린 암호는 절대 평문으로 다시 날리면 안 되는 게 철칙인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게 안 지켜질 때가 있는 거죠. 우리도 과거에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었어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우리 군이 포위작전을 하는데 무전으로 작전 상황을 평문으로 마구 날렸어요. 북한이 이를 다 감청해서 공비들한테 지령을 내려 포위망을 번번이 피해갔습니다.”



●우리가 감청한다는 사실을 북한도 알 텐데 암호를 자주 바꾸지 않나요?



 “암호를 손바닥 뒤집듯 금방 바꾸는 건 어렵습니다. 암호체계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전시에 쓸 암호는 이미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암호가 수돗물처럼 나오는 것은 아니죠.”



●우리의 암호 해독 능력은 뛰어난 편인가요?



 “상대가 암호체계를 바꾸면 3~6개월이 걸립니다만 보통은 그날 감청한 정보는 바로바로 해독해 낼 정도로 뛰어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정보는 하루아침에 전문가가 될 수 없는 분야예요. 군 내에서는 정보는 아무나 다 한다는 식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미군이 주요 정보는 다 갖다 주는데 너희가 뭐 크게 아는 게 있느냐는 식이죠. 작전·인사 출신들은 군단장도, 참모총장도 되고 하는데 정보 출신은 사단장까지 나가는 것도 어렵습니다.”



●정보 출신으로 어렵다는 사단장도 하셨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장군들부터 정신무장을 하라고 했는데 100% 공감합니다. 별 달았다고 해서 누리고 군림하려고만 해서 되겠습니까? 사단장은 양떼 1만 명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이끄는 양치기나 다름없습니다. 솔선수범해야 병사들도 따라오지요.”



●경력을 살펴보니 소령 진급이 다소 늦었네요.



 “육사 출신이면 그 당시엔 소령 진급은 거저 되던 때였어요. 그런데 1976년, 77년에 소령 진급에서 두 번씩이나 탈락해 그렇게 된 겁니다. 대위로 전역할 뻔했는데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진급할 수 있었어요.”



●박 대통령 덕분이라뇨?



 “이복 맏형이 일본에서 살다가 1950년대 말에 조총련의 꾐에 빠져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으로 간 게 문제가 됐어요. 연좌제에 걸려 번번이 진급에서 누락됐어요. 너무 억울해 박 대통령에게 인사청탁 편지를 쓰게 된 거죠. 허허.”



●다행히 편지가 잘 전달됐나 보군요.



 “아는 분 도움이 있었어요. 보안사에서 전화가 걸려와 ‘당신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결국 대통령 지시 때문에 진급은 시켜줍디다. 평생 그 은혜는 잊지 못합니다. 제2 연평해전 직후 국회 국방위 증언이 문제가 돼 전역식도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강제 전역했어요. 그날 바로 박 대통령 묘소를 찾아 펑펑 울면서 눈물의 전역신고를 했죠. 매년 현충일과 박 대통령이 서거한 10월 26일엔 묘소를 찾습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한 장군은 다시 연평도 포격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천안함 사건에서 뭘 배운 건지 참 아쉽습니다. 정보 판단을 소홀히 해 멀쩡한 군함이 격침됐는데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요. 정보의 실패를 경험해 놓고도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는 대북 정보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습디다. 교훈을 얻고 재발을 방지하자는 얘기가 공허하게만 들린단 말입니다.”



한철용 장군은











제주 오현고를 졸업하고 1970년 소위(육사 26기)로 임관했다. 이듬해 백마부대 소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정보분야에 투신해 1군단 정보참모, 한미연합사 정보운영실장을 지냈다. 94년 준장으로 진급한 뒤 육군본부 정보처장을 거쳐 97년 8사단장으로 부임했다.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국방보좌관을 거쳐 2001년부터 대북 감청정보를 담당하는 5679부대 부대장을 맡았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을 앞두고 북한의 도발 징후를 수차례 상부에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회 국방위 감사 때 이를 폭로한 것이 문제가 돼 중징계를 받고 그해 10월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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