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궁금합니다] 고소공포증 극복한 세계랭킹 1위 '거미여인'

중앙일보 2010.12.09 13:49






다시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벌써 '10년째 등반'이다. 국내 스포츠 클라이밍 여제로 불리는 김자인(22·노스페이스)은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15m의 암벽을 겁도 없이 오를 수 있을까. 김자인은 스스로도 그게 '의문'이라고 대답했다.



'인공암벽등반'으로도 불리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전문 산악인들의 훈련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레저 스포츠의 하나로 발전됐다. 하지만 10m가 훌쩍 넘는 높이를 맨손으로 올라야 하는 특성 때문에 '거친 스포츠'로 알려지며 '남성 전유물'로 자리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자인은 그 편견을 완벽히 깬 '여성'으로 불린다.











지난 달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의 금메달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 저 멀리 유럽에서도 금메달만큼 값진 승보가 울려퍼졌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에서 주최한 월드컵 스포츠클라이밍 대회(리드 부문)에서 김자인씨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그녀는 이번 우승으로 월드컵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5연패(리드 부문)를 달성했고 그와 동시에 2010 리드 부문 시즌랭킹과 월드랭킹 1위는 물론, 통합랭킹(리드·볼더링·스피드) 1위까지 휩쓸며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아시안게임 열기로 자신의 우승이 묻힌 것에 대해 서운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늘 그래왔다. 예전엔 박태환 선수 우승이랑 겹쳤고, 또 한번은 여자축구 금메달이랑 겹친 적이 있다"며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어쨌든 다들 잘 된거니 좋은거 아니냐"며 웃어보였다.



◆라이벌은 '두 오빠'



김자인씨는 "오늘의 영광은 '두 오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두 오빠 김자하(26), 김자비(23)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다. 산악동호회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세 남매는 '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골수 '산사람'이다. 김 씨는 9살 때 두 오빠를 따라 우연히 암벽등반장에 갔다가 처음으로 클라이밍 경험을 했다. 호기심에 오르기는 했지만 무서움에 울면서 내려왔다는 그녀는 다시는 올라가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13살이 되던 해 오빠들과 본격적으로 클라이밍을 배우기 시작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챔피언이 됐다. 그녀는 "오빠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클라이밍을 하지 못 했을 것"이라며 "혼자 운동하는 건 지금도 재미없다. 오빠들이 있어서 즐겁고 의지가 많이 된다"고 말했다. 예전엔 오빠들 실력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거의 비슷하다. 덕분에 오빠들과 하는 '아이스크림 내기' 등반에서도 곧잘 얻어먹곤 한다. 그녀는 "오빠들과는 늘 보이지 않는 '라이벌 의식'이 있다. 셋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하는 성격이라 함께 운동하면서 서로 자극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부상위기? 오히려 기회!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 씨는 "안전장치만 제대로 착용하면 절대 위험한 운동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고소공포증'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바로 '집중력'이다. 그녀는 "클라이밍을 하다보면 거기에 몰입돼 다른 잡념이 사라진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높은 곳에 올라와있다는 생각도 잊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부상 위기는 있었다. 2006년엔 발목 부상을 겪었고 2008년엔 어깨 부상이 있었다. 특히 어깨 부상은 3개월이나 운동을 쉬어야 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클라이밍이 어깨 근육을 많이 쓰는 운동이다보니 조금 무리한 탓에 왼쪽 어깨 연골이 찢어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발목 부상 땐 '한 발'로라도 운동을 했었다. 그런데 어깨가 다쳐버리니깐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며 "운동을 쉬는 3개월이 나에겐 3년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러나 그 3개월은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를 계획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추억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



152cm 43kg. 김자인은 이번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가장 작은 선수였다. 덩치 좋은 서양 선수들 사이에서 '작은 고추'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녀는 "예전엔 서양선수가 동양선수를 무시하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1위를 많이 하다보니 언제부턴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더라"며 "이젠 동양선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서양에서는 스포츠 클라이밍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자리잡혀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월드컵 출전 나라조차 없을 정도로 그 입지가 좁다. 김자인은 "스포츠 클라이밍을 대중화 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향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도 정규 종목으로 채택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얼짱? 오빠들이 비웃어요



'스파이더 걸' '거미여인' '얼짱 클라이머' '클라이밍계의 김연아' 김자인의 별명들이다. 그 중 눈에 띄는 '얼짱' 수식어는 두 오빠가 김 선수를 괴롭히는 '놀림거리' 중 하나다. 그녀는 "나는 괜찮은데 오빠들이 자꾸 비웃는다. 오빠들은 나보고 항상 못 생겼다고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예쁘다고 해주실 때마다 중압감이 많이 든다. 그만큼 실력 역시 좋아야 나쁜 소리를 안 듣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 그러나 그녀의 고민은 '외모'가 아니라 '운동'에 있다. 이번 시즌에서 '랭킹 1위'는 차지했지만 완등은 하지 못했다는 그녀. 김 씨는 "다음 시즌 목표는 완등이다. 목표를 이뤘을 때는 '얼짱'이라는 수식어도 좀 더 기분좋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각오를 다졌다.



중앙일보 디지털뉴스룸=유혜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