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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포격당한 그날, 자주포 해병은 용감했다

중앙일보 2010.12.09 01:53 종합 2면 지면보기






채병건
정치부문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2시34분 연평도를 겨냥한 북한군의 포격이 시작되자마자 이곳 K-9 자주포 부대의 1포(첫 번째 포)에 불이 붙었다. 포 왼쪽 4m 지점에 떨어진 포탄에서 나온 파편이 포를 때리면서였다. 불붙은 1포는 무선통신이 두절됨에 따라 고립됐다. 명령을 못 받으니 공격도, 후퇴도 할 수 없었다. 이때 포대 안에 있던 통신병이 유선복구장비를 들고 뛰쳐나갔다. 100여m를 뛰어가 불붙은 자주포에 케이블을 연결했고 유선통신 재개로 지시를 받을 수 있었다.



 자주포부대(해병대 연평부대 제7포병중대) 중대장 김정수 대위가 지난달 27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한 당시 상황이다. 북한의 2차 포격이 시작된 직후인 오후 3시12분 막사 옆 발전기가 고장 났다. 정전으로 지휘소(지하 벙커)에 있던 장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포에 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게 불가능해 졌다.









지난달 23일 북한의 포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평부대 해병이 K-9 자주포 위로 상체를 드러낸 채 대응사격준비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이때 병사 한 명이 뛰쳐나갔다. 북한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는 20여m를 뛰어가 외부에 설치됐던 발전기를 고치고 돌아왔다. 이날 K-9 자주포가 북한군 포대로 대응 공격을 하던 중 포대 내부에선 병사들이 43㎏짜리 포탄을 조립한 다음 부지런히 자주포 쪽으로 옮겼다. K-9 내부 포탄 적치대엔 평소 OO발을 놓는다. 이 OO발은 북한군이 어느 포대에서 쏠지 몰라 사거리별로 O발씩 포탄을 거치한다. 따라서 1차 타격점인 북한군 무도 진지로 계속 쏘려면 누군가는 포탄에 신관을 결합하고 장약을 넣은 뒤 자주포까지 들고 뛰어야 한다. 포대 내부의 포탄 조립 공간과 자주포까지는 10여m 정도였지만 파편이라도 튀어 자주포 포탄을 건드리면 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K-9 포탄의 살상 반경은 50mX50m다. 이날 사병들과 함께 포탄을 나르던 정비 담당 상사는 포탄에 찧여 발가락 한 개가 골절됐다. 그는 이 상태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에야 김 대위에게 보고했다. 김 대위에겐 “다친 게 부끄러워 바로 알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깁스를 한 채 계속 근무했다. 서른 살 총각인 김 대위는 “발전기를 고치라고 내가 명령을 내렸던 대원에게 ‘당시 심정이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라고 해서 갔다’며 싱긋 웃더라”고 말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군의 총체적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군 수뇌부는 북한군 동향에 대한 정보 판단에서 안이했고, 서해 5도는 두 차례의 해상 교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방치돼 왔다. 연평도엔 K-9 자주포가 6문밖에 없었고, 그나마 이 중 2문은 사전 경보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북한군 선제공격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한 걸 국민은 잘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격전 현장에서 열심히 싸운 우리 장병들까지 매도할 순 없는 일이다. 이들은 적어도 그 순간에 비겁하지 않았다. 군은 서해 5도에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천명했지만 아무리 좋은 ‘명품’ 무기도 병사들이 몸을 사리면 무용지물이다. 무기를 움직이는 것은 병사들의 정신이고, 사기다. 군의 정신무장을 강화하고 사기를 올리려면 당시 용감하게 싸웠던 우리 병사들부터 ‘장하다’고 격려해야 한다. 



채병건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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