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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보기만 하십니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중앙일보 2010.12.09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크리스천 마클레이 첫 한국전
영화 속 장면 엮어낸 미술
리움 ‘블랙박스 프로젝트’



‘사운드 아트’의 선구자인 미국 작가 크리스천 마클레이가 지난 10월 영국 런던에서 발표한 ‘시계’의 한 장면. 영화 속 시간을 나타내는 수천개 컷을 짜깁기해 24시간을 구성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엉덩이가 참으로 무거운 작가라는 첫 인상에 이어 ‘지독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3년 동안 생각하고 제작에만 꼬박 28개월을 보낸 집념의 작품 ‘시계’는 수천 편 영화 속 시계 장면만을 짜깁기해 실시간과 정확히 맞물리게 한 24시간짜리 영상물이다. 제 시계와 영상 속 시계를 확인하던 한 관람객은 ‘어쩜 1초도 어긋나지 않을까’ 낮은 한숨으로 놀라움을 토한다.



 전시장 이름 ‘블랙박스’ 그대로 캄캄한 상자 속 같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www.leeum.org)에서 펼쳐지는 미국 작가 크리스천 마클레이(55)의 ‘소리를 보는 경험(What you see is what you hear)’전은 ‘사운드 아트(sound art)’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보는 것을 들을 수는 없을까’에서 출발한 소리엮음이 미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현장이다.









크리스천 마클레이



 국내외에서 생산된 신선한 미디어 작품과 작가를 선보이겠다는 ‘블랙박스 프로젝트’ 첫 순서인 마클레이의 전시는 1995년 작 ‘전화’(7분), 2002년 작 ‘비디오 사중주’(14분), 지난 10월 영국 런던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선보인 ‘시계’(24시간)로 이뤄졌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화 장면만 조각 내 이어 붙인 ‘전화’는 작가의 초기작으로 청각이 시각보다 더 섬세한 미술언어일 수도 있음을 증명한다. 4개 대형화면에서 동시에 다른 영화 장면이 돌아가는 ‘비디오 사중주’는 4중주단의 완벽한 호흡처럼 음악과 음향이 한 몸이 되는 순간의 연속이다. 창작은 아니지만 마클레이의 작곡이라 이름할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 화제가 된 두 가지 일화. 첫째는 과연 ‘시계’를 24시간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다. 밤과 새벽으로 갈수록 진진한 화면이 이어진다는 설명인데 현재로서는 미술관 관람 시간인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내용만 볼 수 있다.



 둘째는 편집된 화면 중 한국영화는 몇 편이나 되고 어떤 영화가 들어갔느냐다. 프리뷰에서 확인된 작품은 ‘올드 보이’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달콤한 인생’ 등이고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작품이 ‘비디오 사중주’에 스쳐 지나간다.



 마클레이는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 많은 영화를 언제 다 보느냐는 질문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얻은 두 명의 내 조수들이 본다”고 답했다. 전시는 9일부터 내년 2월 13일까지. 11일 오후 4시 리움 강당에서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강연이 열린다. 02-2014-6901.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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