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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89] 퍼팅의 순간, 활 쏘는 순간

중앙일보 2010.12.09 00:18 종합 29면 지면보기








# 풍경 1 : 10년 전이었습니다.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가 18번홀에서 3m 거리의 퍼팅을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건 퍼팅이었죠. 공이 들어가야 -4타가 되거든요. 공을 넣으면 PGA투어에서 1년 더 뛰게 되고, 못 넣으면 짐을 싸서 한국으로 영영 귀국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는 퍼터를 잡고 자세를 취했죠. 팔이 덜덜 떨렸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공이 안 들어간다’는 걸 직감했죠. 최 선수는 자세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밤의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타수를 생각하며 치지 말게 하시고, 마음을 비우고 치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마음이 착 가라앉았습니다. 팔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죠. 다시 자세를 잡은 최 선수는 마지막 퍼팅을 했습니다. 공은 또르르 굴러가 홀에 쏙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최 선수는 “그건 내 인생을 건 퍼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 풍경 2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도 흥미로운 풍경을 봤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결승에서 맞붙었죠. 한국팀이 222점을 쏘며 경기를 마쳤습니다. 중국팀은 203점. 마지막 두 명의 사수가 10점씩 쏜다면 중국이 금메달을 딸 상황이었죠. 중국 선수 다이샤오샹이 활시위를 천천히 당겼습니다. 불과 몇 초,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툭’하고 화살이 시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과녘에 ‘팍’하고 꽂혔습니다. 그러나 화살은 6점 자리에 박혔습니다. 이 화살 하나로 중국팀은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양궁 선수들은 활만 쏘지 않습니다. 마음도 함께 쏩니다. 정말 몇 초의 시간이죠. 시위를 당겨서 놓는 시간, 그 사이에 중국 선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는 무엇을 붙들고, 또 무엇을 내려놓았을까요. 우리의 마음은 무게가 없습니다. 그래서 붙드는 것도 순식간이고, 내려놓는 것도 순식간이죠. 금메달을 눈 앞에 둔 마지막 활시위에 그는 어떤 마음을 실었을까요. ‘6점’이란 점수가 그걸 말해줍니다.



 비단 스포츠 경기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도 늘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내 삶이 걸린 활시위, 내 운명이 걸린 퍼팅의 순간이 꼭 있습니다. 어떤 이에겐 그게 수능시험이나 입사시험입니다. 혹은 배우자를 정하거나 묵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거창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우리는 ‘내 인생을 건 퍼팅의 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눈을 감아 보세요. 그럴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퍼팅을 하는지 말이죠. 어떤 마음으로 승부수를 날리는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경직되고 맙니다. 마음도 굳고, 몸도 굳습니다. 떨리기 때문이죠. 겁이 나기 때문이죠. 지금껏 가진 걸 잃을까, 앞으로 가질 걸 놓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떨리는 팔, 떨리는 호흡으로 공을 치다 홀을 놓치고 맙니다. ‘타수를 생각하며’ 퍼팅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짚어봐야 합니다. 최경주 선수의 짧은 기도를 말입니다. 왜냐고요? 인생을 건 퍼팅의 순간, 어떤 마음으로 공을 칠 건가. 그에 대한 답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런 순간에 왜 마음을 몽땅 비워야 하는가?



 마음은 호수의 수면입니다. 집착은 수면을 때리는 빗방울이죠. 우리가 무언가에 집착할 때 호수의 수면에는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죠. 그럼 파문이 생깁니다. 마음에 파문이 일면 늘 정확성을 잃습니다. 수면에 비친 풍경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풍경을 놓치니 정확한 판단도 놓치죠. 그런 수면에선 지혜가 올라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최 선수의 기도는 그런 파문을 잠재웁니다. 그래서 호수의 수면에 정확한 풍경이 비칩니다. 정확한 풍경과 정확한 상황을 보면 정확한 판단, 정확한 대안이 올라옵니다. “왜 이렇게 팔이 떨리나. 공을 못 넣을까 두려워서 그렇군. 그럼 그 놈을 내려놓자. 성공에 대한 기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몽땅 내려놓자.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뭔가. 그렇군. 퍼터군. 그럼 오직 퍼터에만 집중하자. 똑바로 빼서 똑바로 밀 수 있도록.”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죠. 내 인생을 건 퍼팅의 순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공을 칠 건가.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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