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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안동의 눈물, 그리고 징비록

중앙일보 2010.12.09 00:04 종합 38면 지면보기






송의호
대구경북취재팀장




경북 안동시는 면적이 서울특별시의 2.4배쯤 된다. 땅은 넓지만 변변한 제조업체 하나 없는 낙후지역이다. 주민들은 농업에 의존해 생계를 이으며 고추·사과·한우 등이 주요 생산물이다.



 그래도 안동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직도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고택·서원 등 전통 자산이 잘 보존된 데다 선비문화 같은 정신적 DNA를 공유한 때문이다. 대구 출신의 한 사학자는 그런 분위기를 “안동은 퇴계라는 신(神)이 지금도 존재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안동시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상표 등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동시는 지난해 자체 브랜드 가치를 평가한 적이 있다. 한국생산성본부에 의뢰해 지역에 소재한 유·무형의 문화 자산과 농·축산물의 브랜드 가치를 매긴 것이다. 평가액은 2261억원이었다.



 이런 안동이 지난달 29일 발생한 구제역(口蹄疫)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구제역은 와룡면 서현리에서 1차 발생한 뒤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방역 차원에서 한우·돼지 전체 15만6000여 마리 중 9만여 마리가 살처분돼 땅에 묻혔다. 방역 현장에 투입됐던 안동시 공무원(52)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일주일 만에 숨졌다. 연평도 정국에 가려 국민들의 관심이 약하지만 이 지역엔 전례없는 재난이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축산전쟁’으로 규정했다. 구제역 발생 농가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공무원과 군·경찰은 24시간 길목에서 방역 중이다. 국내외 관광객이 사철 찾던 도산서원 길 퇴계로와 제비원 미륵불 앞 도로들이다. 방역 장비를 총포로 바꾸면 영락없는 연평도 모습 그대로다. 농민들은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소를 살려 주면 안 되느냐”고 애원한다. 한우 살처분을 간신히 면한 60대 농민은 며칠 전 “가슴이 벌렁거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재난은 어디서 왔을까. 아직 밝혀진 건 없다. 다만 1차 발생지의 한 축산인은 지난달 구제역 발생국인 베트남을 여행했지만 입국 때 권고사항인 검역을 거치지 않았다. 또 지역 가축위생시험소는 6일이나 앞서 1차 발생지에서 간이검사를 했지만 음성 판정을 내렸다. 허점들이다.



 공교롭게도 구제역이 확인된 날 안동한우는 서울에서 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수상 3시간 뒤 구제역이 발표됐다. 명품 한우라면 언제 터질지 모를 구제역 대책은 있어야 했다. 영화 ‘워낭소리’처럼 정든 소를 묻어야 하는 농민들은 공황 상태다. 벌써 “안동한우가 끝장났다”는 탄식도 들린다. 안동이란 자부심도 상처를 입었다.



 올해만 세 차례 구제역으로 전국에서 17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매몰됐다. 경북대 수의학과 김기석 교수는 “해외여행이 잦아진 만큼 축산인은 물론 시민들도 검역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진왜란을 수습한 재상 류성룡은 두 번 다시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전란의 교훈을 『징비록』으로 남겼다. 그 집필 장소가 바로 안동이다. 『징비록』의 정신을 살려 구제역도 준열하게 반성하고 제도를 재정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송의호 대구경북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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