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능 살려 봉사합니다

중앙일보 2010.12.07 20:48



다문화 주부들에 병원 문턱 낮추고, 대학생들에게 경험 나누고









재능봉사는 자신의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활동이다. 병원 전문의와 직원들은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해 진료 봉사를 하고, 방송국 PD는 학생들을 위한 창의력 수업을 한다. “항상 해왔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니 기쁘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아픈 몸과 마음 치유하는 의료나눔봉사



“대림동에는 조선족과 다문화가정이 많아요.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 접수 절차가 복잡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쉽지 않죠.”한림대강남성심병원(영등포구 대림동) 사회사업팀 이송월(29)씨의 말이다. 그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이씨는 병원의 봉사모임 중 하나인 ‘외국인·다문화 가정 지원팀’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난해 5월에 모임을 꾸린 이 팀에는 현재 20명이 활동한다.



팀장인 감염내과 이재갑(36) 교수는 “실제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병원 이용 설명서 번역판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설명서는 누군가 자세히 설명해줘야 효과가 있는 것이어서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그 다음에 생각해낸 게 8월에 연 다문화가정 병원체험 학습이다. 병원 이용 방법을 안내하고 B형 간염예방접종을 무료로 해줬다. 9월엔 건강교실을 열어 결혼이주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꼭 챙겨야 하는 예방접종을 알려주고, 건강상식과 질환관리법 등을 교육했다. 독감예방 무료접종도 실시했다. 이 교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남을 돕고 싶었다”며 만족해 했다.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서툰 한국어로 질문도 쏟아졌다. 한국말을 모르는 참가자들은 중국어에 능통한 경리팀 장재흥(54) 팀장의 도움을 받았다. “중국어로 말을 거니까 반기더라”는 장 팀장은 “취미로 4년 정도 배운 중국어를 그렇게 활용할 줄 미처 몰랐다”며 기뻐했다.



이 교수는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내년, 그 이후에도 꾸준히 진행할 것”이라며“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내년 1월쯤 사회복지사들을 초청해 워크숍을 열 계획이다. 무엇보다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늘 하는 일이 남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재능봉사를 왜 하느냐고요? 일주일에 딱 2시간만이라도 착하게 살기로 했거든요.(웃음)” KBS 교양국 프로듀서인 송희일(55·양천구 목동)씨의 말이다. 송씨는 7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9시에 영등포구자원봉사센터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창의력 교실’을 진행한다. 젊은이들에게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일깨워주는 강의다.



경제적 소외계층만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 소외계층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송씨의 생각이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학생은 취업하고 싶은 회사에 아는 사람이 없거나 자문을 구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프로듀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의 간접경험이 풍부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죠.”



창의력 교실은 올 3월부터 준비한 강의였다. 처음엔 미디어제작론만 다루려고 했다. 하다보니 사물을 보는 시야 넓히기부터 창의력 높이기와 사람을 대하는 요령까지 종합적인 강의가 됐다. 자신의 경험을 녹인 강의가 송씨 자신도 재미있었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재능봉사는 나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작은 나눔의 행위죠. 받는 사람은 물론이고 주는 이의 만족도도 높여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능봉사를 ‘이기적인 사회봉사’라고 부른다. 말은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그는 사소한 행위가 남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걸 믿는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12년 전에 만났던 한 취재원의 영향이 컸다. 1998년 송씨는 ‘세계는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는가?’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유럽·미국·일본을 헤매고 다니다 프랑스 남부툴루즈에 있는 ‘에어버스’ 회사를 방문했다. 근무시간을 칼같이 지킨다는 유럽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따라다니며 취재편의를 제공하는 에어버스 홍보실 직원을 보고 송씨는 의아했다. 당시 미국 보잉기에 대항해 새로운 항공기 에어버스를 만드는 유럽연합을 취재하던 참이긴 했지만 프로그램이 에어버스에어떤 도움이 될지는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그 담당자가 하던 말이 ‘Who knows(누가 알겠느냐)’였어요.” 아주 사소한 일일테지만 사심 없이 성심껏 하다보면 기대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을 마음에 담고 지내던 그는 그 담당자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막상 실천에 옮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송씨는 이 다음에 퇴직을 하더라도 재능봉사를 계속할 생각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자끼리 등산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재능봉사 현장에서 만난다면 더 반갑지 않겠느냐”는 송씨는 “누가 알겠어요? 내 재능에 정성을 보태는 일이 훗날 기적을 만들지요”라며 활짝 웃었다.



[사진설명]다문화가정을 위해 재능봉사를 하는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장재흥 경리팀장, 사회복지사 이송월씨( 왼쪽부터).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