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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in 문화人] 조각가 정정식

중앙일보 2010.12.07 03:12 5면 지면보기



예술작품 감상하는 작은 쉼터 … “점심 먹고 들르세요”



정정식 작가는 자기의 것을 찾지 못하고 남의 것을 창작 작품으로 내놓는 사람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예술은 한마디로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세계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조영회 기자]















“도심 속 작은 갤러리를 아시나요”



천안성정중학교 후문의 한 편의점 건물. 엘리베이터에 ‘JJ Gallery 301호’라는 작은 푯말이 붙어 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갤러리는 맞는데 섣불리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문을 열자 99㎡의 아담한 공간에 다양한 조각작품과 그림이 방문객을 맞이 한다.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조각작품인 ‘소년 입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7~8살 정도의 어린 소년을 모델링 한 작품으로 미래를 꿈꾸는 소년의 이미지를 형상화 했다. 두 팔을 하늘을 향하고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맞은편 어느 여류 피아니스트의 딸을 화폭에 담은 ‘소녀의 초상’도 시선을 끈다. 개성 강한 여자 아이의 눈빛이 반항적이면서도 남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림 배경에는 유명한 중국 당대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 써있다.



 작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도 전시돼 있다. 고흐, 렘브란트, 다빈치 등 많은 유명 작가를 비롯해 국내에도 자화상을 그리는 작가들이 종종 있지만 지역에서는 드문 일이다. 도시민들이 언제든 쉽게 들를 수 있는 도심 속 갤러리로 무료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문을 열면 후덕한 인상의 한 예술가가 작업실에서 나오며 반긴다.











중국 땅에 세운 매헌 윤봉길 흉상



2000년 매헌사랑회와 윤봉길기념관이 중국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에 윤봉길 의사의 흉상을 모시기로 결정했다. 정정식 작가에게 작품 의뢰가 들어왔다. 늦여름부터 윤봉길 의사에 대한 정 작가의 인물연구가 시작됐다.



 윤봉길 의사에 대한 모든 자료를 모았다. 생가와 기념관, 후손을 찾아 다녔다. 상해임시정부를 방문해 실제 도시락 폭탄(모조품)과 비슷한 자료 사진 등 흔적들을 모아 분석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그 인물의 모든 면을 알아야 가장 유사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게 평소 그의 철칙이다.



 그는 흉상이 세워질 상해임시정부와 1000㎞ 이상 떨어진 중국 칭다오(靑島)에 머물며 흉상 제작에 들어갔다. 칭다오는 윤봉길 의사가 낯선 이국 땅에 처음 머물며 시장과 세탁소 등을 전전하며 훗날 거사를 기약했던 곳이다.



 완성된 작품은 5일에 걸쳐 상해로 다시 옮겨 2000년 12월 19일 홍구공원의 매정(매헌이 거사했던 장소를 기리기 위해 지은 2층 건물) 앞에서 봉정식(奉呈式)을 치른 뒤 상해임시정부에 세웠다. 정 작가는 3년 후 홍구공원 현지에도 임시정부와 같은 흉상을 기증했다.



 정 작가는 “당시 봉정식에 참석한 중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젊은이가 이 커다란 나라의 국민들을 모두 살렸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건설사를 떠나 예술가의 길을 걷다



정정식 작가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상 조각가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지방 전문대 토목과에 들어가 1980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잘 나가던 직장을 6년 만에 접고 조각가의 길을 선택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덕분(?)인지 1988년 각종 언론에서 ‘33살 서울대 최고령 합격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으며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인물화에도, 음악에 있어서도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 1996년 충남 예산에서 후배들과 ‘작은음악회’를 만들었다. 이후 ‘수요예술무대’와 ‘쌍송음악제’를 개최하는 등 지방에 문화의 씨앗을 심어 나갔다.



 고향을 떠나 천안에 정착한 그는 예술작품을 하나로 모아 천안박물관에서 개인전(2009년)을 열기도 했다. 작은 갤러리를 주변 직장인이나 시민들이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정 작가는 “우리나라 지방도시는 무대미술, 환경미술, 조각 등 여러 방면의 전문실력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역에 맞는 특화된 문화행사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람문의=041-571-0224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주요 작품 설명



1.의좋은 형제
 브론즈, 오석, 화강석, 6.6x2.1x4.6m, 충남 예당저수지 대흥면, 2002년작, 고려 말 충남 예산의 실존인물이었던 이성만, 이순 형제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형상화 했다. 핵가족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 공동체의 가장 기본인 가정에 대한 중요함과 형제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는 고귀한 얼을 담은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2.매헌 윤봉길 흉상 750x300x450cm, 중국 상해임시정부청사와 홍구 공원 2000년 작, 중국 칭다오에서 직접 제작



3.말 두상 Terra-cotta, 27x47x47cm, 소장 작품, 2010년 작, 삐쩍 마른 돈키호테의 ‘로시난테’를 작품화 했다. 속 파기 방법을 피하고 직접 속을 비우면서 만들어 가는 방법으로 완성했다.















4.생산 웅천오석, 화강석, 12.0x3.0x2.4m,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LG빌딩, 2004년 작, 흰색의 화강암을 하나하나씩 쌓아올린 덩어리와 개체를 하나의 검은 라인으로 연결시키며 지나가는 모습으로 화합을 위한 또 하나의 생산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5.버려진 산 나무, 천, 85x170cm, 소장 작품, 2010년 작, ‘버려진 산’, 공사장이나 공장에 버려진 나무, 합판 등을 모아 만들었다. 버려진 것들이 조각가의 손을 거치면서 하나의 개체로 새로운 탈바꿈 했다. 다른 모습으로 생명을 얻어 모두가 함께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6.환기장치의 화려한 변신 1999년 아파트 환기장치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7.오색의 표정 콘크리트, 타일, 특수유리, 아연판에 채색, 4.2x21.0x6.5m, 아파트 주차장 환기공간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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