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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24) 미국 대통령과 그 아들

중앙일보 2010.12.07 01:18 종합 10면 지면보기



아이젠하워, 6·25 참전 아들에게 “포로로 잡히면 자결하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왼쪽) 미국 제34대 대통령 당선자가 1952년 12월 한국을 방문해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미 육사 출신의 존은 당시 30세로 2차대전에 이어 한국전에도 참전했다. 미국의 사진전문잡지 라이프에 실린 사진이다.





그것은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중에 그 곡절을 알았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그 아들 존 아이젠하워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존 아이젠하워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문(軍門)에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최고 영웅으로 손꼽히는 아버지의 후광(後光)이 아주 거셌지만, 아들인 존은 그에 편승하지 않고 나름대로 군인으로서의 영예를 쌓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 그가 6·25전쟁이 발발한 뒤 1952년 한국 전선에 뛰어들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걸림돌이 생기고 말았다. 아버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그해 실시되는 미 34대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됐기 때문이었다. 둘은 공화당 유세가 있었던 시카고의 어느 한 호텔에서 만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로운 참전을 고집하는 아들의 입장을 우선 듣기만 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답게 결국 아들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강한 전제조건이 따랐다. “절대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죽거나 부상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북한군이나 중공군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주문이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아들에게 “네가 포로로 잡히면 나는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아들 존 아이젠하워가 나중에 술회한 내용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한국 전선으로 향하려는 아들에게 ‘적군에 잡히는 상황이 생긴다면 차라리 자살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셈이다.



 한국에서 전선을 지휘하는 제임스 밴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은 그런 내막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밴플리트 장군이 아이젠하워 당선자의 방한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 첫 단계에서 한국 주둔 미 3사단 일선 대대장으로 근무 중인 존 아이젠하워의 보직 이동 사실을 보고한 이유였다. 미 대통령 당선자의 아들이 적군에 포로로 잡힌다면 미국의 국가 이익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밴플리트 8군 사령관 또한 한국 전선에서 아들을 잃은 장군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의 아들을 한국 전선에 보낸 아버지였다. 말하자면 서로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들을 잃은 밴플리트 장군이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의 아들에 관한 보고를 했고, 대통령 당선자는 공식적으로 “단지 포로로만 잡히지 않는 것이 내 희망”이라는 말을 건넸다.



 미군 고위급 지휘관들은 그랬다. 늘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을 기울였고, 개인과 자신의 가족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정신에 충실했다. 나는 영문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그런 곡절을 알고 난 뒤에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미국 고위층 인사들의 정신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이어 짤막하게 한국 전선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도착한 2일 저녁에 기본적인 설명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자세하게 한국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보고를 마친 밴플리트 사령관이 나를 한 번 힐끗 바라본 뒤 “이제부터 백선엽 한국 육군참모총장이 한국군 증강계획을 보고하겠습니다”고 말했다.



 내 차례가 온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해 뒀던 차트 옆에 섰다. 손에는 브리핑용 지휘봉을 쥐고 있었다. 차트를 두고 내 반대편에는 라이언 미 군사고문단장이 섰다. 그는 내가 브리핑할 때마다 차트를 한 장씩 넘겨주는 역할을 맡았다.



 미 대통령 당선자 앞에서 한국군 증강계획을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나는 이 ‘행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선을 함께 누비며 많은 미군과 숱한 대화를 하면서 키운 영어 실력이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 현안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 신임 대통령 당선자 앞에서 브리핑을 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꽤 큰 부담을 안아야 했다.



 나는 제법 긴장을 했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마음의 부담을 따지기에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너무 간절하고 거대한 과제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였다.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계제가 아니었다. 연습하고 생각했던 대로 브리핑을 해 나갔다.



 나는 한국군이 현재 10개 사단에 불과하다는 점,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해야 한다는 점 등을 설명해 나갔다. “한국군을 증강하면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을 했다. 모든 것은 결국 자원과 자금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군 1개 사단을 편성하는 비용으로 한국군 2~3개 사단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간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미국이 전폭적으로 협조를 해 준다면 20개 사단으로 한국군을 증강하는 작업은 2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분 정도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브리핑을 하는 동안 라이언 소장은 옆에서 부지런히 차트를 넘겼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와 배석한 브래들리 합참의장,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등 미 고위 지휘관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브리핑을 끝내자 아이젠하워는 “고맙다. 잘 들었다. 귀관의 브리핑 내용에 원칙적으로(in principle)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가 한 말 중에 내 귀에 쏙 들어온 단어는 ‘원칙적으로’라는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군 증강 작업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젠하워 당선자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나는 밴플리트 사령관의 얼굴도 살폈다. 그 또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석한 브래들리 합참의장 등의 얼굴도 밝았다. 일단 브리핑까지는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나는 보고를 위해 경무대로 향했고, 아이젠하워 일행은 일선 국군부대 시찰을 위해 움직였다.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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