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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학벌 이긴다” … 한 우물 파 성공시대 활짝 연 장인들

중앙일보 2010.12.07 00:51 종합 16면 지면보기
남재원(59) 골드&해시계 대표는 6일 동서울대학 시계주얼리학과에서 강의를 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이 대학의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남씨의 학력은 전남 순천의 동산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다. 그런 그가 겸임교수 자격을 얻은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을 따라올 사람이 없어서다.


‘이달의 기능인’ 수상자 20명의 삶 살펴보니

 남 대표는 순천의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계점에 취직해 돈을 벌었다.



 “중학생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이를 악물고 손가락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시계와 씨름을 했습니다. 기술을 익혀 서울에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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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 때 그는 서울 시대백화점에 시계수리기사로 취직했다. 손기술을 인정받아 다른 백화점에 스카우트됐다. 1992년 그는 신촌 현대백화점에 수리점을 개업해 독립했다. 지금은 현대백화점 미아점에 분점도 열었다. 가난해서 못 배워 설움을 당했던 옛 생각에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내놓고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심장병환자 수술비를 대고 있다. 이런 공로로 2004년에 서울사랑시민상 봉사부문상도 받았다.



 ‘형편이 나아졌을 때 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학벌은 기술을 못 따라오지만 기술은 속이지 않기 때문에 학벌을 이긴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시계만 만진 그는 2005년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지난해 7월에는 이달의 기능한국인에 선정됐다.



 남 대표처럼 외길 인생을 살며 기술 하나로 성공시대를 연 사람이 적지 않다. 본지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수여하는 ‘이달의 기능한국인’ 20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당시 학력은 고졸 이하가 85%였다. 중졸 이하의 학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도 35%나 됐다.



 ㈜한백 윤흡(55) 대표는 “큰 아이가 유치원 갈 때 지원서에 학력을 적는데 중졸로 적었더니 아내가 ‘확인할 것도 아닌데 그냥 고졸로 적으라’고 해 핀잔을 줬었다”며 떳떳해했다. 수상자 대부분이 윤 대표처럼 학력보다는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초졸 학력의 ㈜대흥제과제빵 김대인(56) 사장은 “고졸자 10명 중 8명이 대학을 가는 세상이지만 부끄럽지 않다”며 “가방끈보다는 확실한 기술 하나를 갖는 것이 더 확실한 성공의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에 의존하던 디지털제빵기계를 개발해 대기업은 물론 미국·일본·베트남 등에 수출하고 있다.



 기술을 밑천 삼아 창업한 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이도 있다. 학력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 기술을 진화시키기 위해서다. 보석디자인회사인 진영사 박정열(53) 사장은 “요즘은 스토리가 담긴 맞춤형 디자인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배워야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대구의 모 전문대 보석감정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수상자 중에 전공을 바꾼 사람은 2명뿐이었다. 한 우물만 팠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수상자 대부분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독보적이다.



 이들은 좌절도 많이 경험했다. 실직해 공원벤치에서 칼잠을 자기도 하고(영광피엠에스 정호순 대표), 10대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과 담배를 하며 방황(삼성테크윈 정희태 기감)도 했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고 이 분야에서 내가 최고”라는 신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역경을 이겼다.



 의료장비업체인 ㈜신영포엠 김익한(48) 사장은 “기름 냄새 맡기 싫다며 인문계로 발을 돌린 친구들이 지금은 모두 부러워한다”며 “학력보다는 재능을 살리려고 뚝심 있게 외길을 가는 젊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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