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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아낌없이 뺏는 나무’

중앙일보 2010.12.07 00:17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라는 동화는 1964년 출간된 이후 30개 언어로 번역됐다. 미국에서만 800만 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이 책에는 소년과 나무가 나온다. 나무는 소년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내준다. 급기야는 자신의 몸을 내줘 소년이 배를 만들어 떠날 수 있게 해준다. 소년이 노인이 돼 돌아왔다.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무지만 소년이 그루터기가 된 자신 위에 앉아 쉴 수 있게 한다.



 소년과 나무의 관계에서 상호주의(reciprocity)라는 것은 없다. 상호주의는 내가 준 만큼 받고, 내가 받은 만큼 주는 것이다. 상호주의는 국내 사회나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국제관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다. 상호주의는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길이다. 상호주의는 남북관계에서도 남북 모두에게 득이 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상호주의는 적어도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남북 관계 상황은 상호주의의 실패와 밀접하다. 공식명칭이 ‘대북 화해협력정책’인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과 현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남북 간에 상호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햇볕정책에서 남북 간 상호주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결과였다. ‘아낌없이’ 주다 보면 북한이 변해 남북 간에 상호주의에 입각한 협력과 평화가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비핵·개방 3000’은 상호주의를 남북 관계의 과정에 도입하려고 했다. 북한에 ‘아낌없이’ 준다는 면에서는 ‘비핵·개방 3000 구상’도 햇볕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단계에 따른 시차가 있을 뿐이다. 북한의 1인당 GDP를 10년 내에 3000달러로 올린다는 구상을 실현하려면 역시 ‘아낌없이’ 주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만약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시늉’만 했어도 지금쯤 우리 정부는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아낌없이’ 퍼주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은 어쩌면 상호주의에도 ‘아낌없이’ 받는 데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기회가 생기면 대한민국을 ‘아낌없이’ 뺏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한쪽은 ‘아낌없이’ 주려고 하고 한쪽은 ‘아낌없이’ 뺏으려고 하는데 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갈 리 없다.



 우리에게도 ‘아낌없이’ 주는 것뿐만 아니라 뺏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북한 주민을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아낌없이 뺏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흡수통일은 북한 정부뿐만 아니라 남한 정부가 지극히 꺼리는 파국적인 결과였다. 우리는 흡수통일이 낳을 희생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 돌아온 것은 지난 60년간에 북한 정부가 자행한 470회의 도발과 납치·사망 4119명이다. 북한을 ‘아낌없이 뺏겠다’는 생각이 확고하지 않았기에 민족의 통일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 온 이유는 상호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희생이라는 가치도 세상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소년은 일방적으로 받고 나무는 일방적으로 준다. 그러나 소년과 나무는 모두 행복하다. 남북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실패한 상호주의를 넘어서는 게 필요하다.



 아낌없이 주고받는 관계는 종교나 사랑의 관계에서 주로 발현된다. 아낌없이 주고 받는 것은 부모 자식, 부부 관계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인들이 무아(無我)·무욕(無慾)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며 천국·정토(淨土)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와 남북 통일문제는 결국 애국(愛國)의 문제다. 나라가 대상인 사랑의 문제인 것이다. 통일에 대한 국민의 ‘종교적’인 열정이 필요하다. 사랑에는 무한 희생이 따른다. 아낌없이 주는 것뿐만 아니라 뺏는 것에도 희생이 따른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뺏는 것에서 오는 희생을 두려워한 나머지 주는 것에서 오는 희생 문제에 안주하고 집착했다.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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