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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불법 SW 단속할수록 개발업계는 손해?

중앙일보 2010.12.07 00:15 경제 4면 지면보기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




허름한 점퍼에 푸석한 얼굴.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SW) 신제품을 소개하려고 기자를 찾아온 날 그의 모습은 ‘사장’ 같지 않게 소박했다. 10년 넘게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먹고 자며 SW 개발에 몰두했다고 했다. 공인기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대기업과 정부기관에 납품도 했지만 제대로 된 판로를 뚫기 어려웠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거래 대기업 계열사가 기술을 슬그머니 가져가면서 “소문나면 안 된다”고 겁을 줬다. 큰 거래처에 밉보이면 안 되니 당연히 소문을 내지 않았다. 이 SW가 본지 지면에 자그맣게 소개된 뒤 “주요 언론을 처음 탔다”고 감격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고 하는데 국내 SW 업계는 전전긍긍한다. FTA로 SW 거래가 투명해지면 저작권 침해가 줄어 좋을 텐데 왜 그럴까. 희한하게도 불법 SW 규제가 강화되면 손해라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정품 SW를 더 많이 쓰면 반가워해야 할 텐데 웬일일까. 검찰과 경찰이 불법 SW를 쓴다는 이유로 대기업 등 큰 고객을 단속하면 해당 SW 거래업체가 밉보여 계속 거래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일부는 불법 복제품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 정품을 써주면 SW 업체 입장에서는 낫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풍토에서 우리 SW 업계는 시들어 왔다. 2005년 관련 업계 성장률이 10%로 반짝하다가 2007년 7%, 2008년 5.6%, 지난해 3%로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정부가 대규모 SW 진흥책을 내놓은 올 상반기에는 1%로 떨어졌다.



 올 들어 불어닥친 스마트폰 열풍은 한국이 SW 분야에서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실감케 했다. 한국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왜 나오지 않느냐는 탄식이 잇따른다. 하지만 중소 SW 업체와 원청업체 간의 불공정한 먹이사슬이 바뀌지 않으면 SW로 세계를 제패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성공신화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근래 대기업과 정부가 중소업계와 SW산업 살리기를 위한 상생을 부르짖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에 걸맞은 SW 인프라를 갖추게 될까.



 애플·MS 창업자 모두 창고에서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벤처기업가도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신화를 꿈꾼다. SW 기업가들의 성공담이 지면을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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