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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글로벌 기업 되려면 세계와 소통하라

중앙일보 2010.12.07 00:14 경제 4면 지면보기






박승안
삼성SDS 정보통신기술연구소장·CTO




1960, 70년대엔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에서 머리 좋은 자식 하나를 대표선수로 뽑아 서울 명문대학에 유학을 보내고 소를 팔아서라도 학비를 조달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비록 먹고살기 어렵고 농사짓는 품 하나가 아쉽지만 이 아이가 대학을 졸업해 사법고시에라도 합격하는 날에는 집안을 크게 일으키리라 기대한 때문이다. 기업에서의 연구개발(R&D) 투자라는 것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어떤 기업이든 규모가 얼마간 커지면 대개 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든다.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을 개발해 미래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가끔 다른 기업 연구소장들을 만나면 비슷한 푸념을 종종 듣게 된다. 몇 되지도 않는 연구원과 쥐꼬리만 한 예산으로 대박 신기술을 만들어내라니 죽을 맛이라는 소리다.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독촉하는 통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고들 한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하소연이다. 수많은 아이디어 중 고르고 골라 무수한 시행착오와 천신만고 끝에 기술을 개발해도 실제 사업화에 성공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엔 빠른 성과에 대한 기대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정서가 있다. 사정이 이러니 쉽고 빠른 성과가 가능한 것에 먼저 관심이 가는 반면, 오래 걸리고 어려운 본질적 R&D는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연구소 내부의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연구원은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도 왜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잘 안 나올까. 오랜 세월 계속돼 온 연구소장들의 이런 고민에 대한 본질적 원인은 다름 아닌 조직 자체의 폐쇄성이라는 지적이 최근 많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디어를 내는 일부터 시작해 기술을 개발하는 전 과정을 연구소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대개 사원들 중에서 가장 머리 좋고 창의력도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렇다 보니 때론 엘리트 의식이 넘치기도 하는데, 이 모두가 결과적으로 연구소를 현장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자칫하다간 시장이나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는 동떨어진 R&D에 골몰하는 쓸모없는 집단이란 악평을 듣게 되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들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오픈 R&D’다. 연구소 문을 활짝 열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기술에 경도돼 시야가 한정된 연구원들의 판단에만 의존해서는 가치 있는 것들을 골라내기 어렵다. 현장과 시장에서의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R&D를 진행할 때도 다른 기업 연구소와 손을 잡는다거나 국내외 학교들과 산학 연계를 한다면 한정된 자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우리 기업 연구소들의 고질적 문제, 즉 쉽고 빠른 성과에 골몰하느라 보다 본질적 연구에 매달리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개방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의 크기도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적극적인 R&D 투자가 필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고방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기업 연구소의 문을 과감히 열어 회사의 다른 조직, 나아가 세계와 소통하며 새로운 기술 개발에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만 글로벌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들어서 있다.



박승안 삼성SDS 정보통신기술연구소장·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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