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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복제약

중앙일보 2010.12.07 00:13 종합 35면 지면보기








세상이 뒤집힐 만한 발명을 하고도 보상은커녕 죽음으로 죗값을 치른 시절이 있었다. 로마 제국 때 일이다. 한 장인(匠人)이 궁정에 찾아와 아름다운 유리 꽃병을 꺼내 보인 뒤 느닷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놀랍게도 병은 산산조각 나는 대신 움푹 홈만 파였다. 깨지지 않는 유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를 본 티베리우스 황제가 물었다. “비법을 아는 자가 또 있느냐.” 장인이 자랑스레 없다고 답하는 순간 목을 베라는 명이 떨어졌다. 신기한 유리 탓에 황제가 지닌 금과 은의 값어치가 폭락할까 저어한 것이다.



 발명과 혁신의 중요성이 부각된 건 르네상스 시대부터다. 그 유명한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건축한 필리포 브루넬레스코가 사상 첫 특허를 받았다. 돔을 짓는 데 필요한 대리석 운반용 배를 설계한 뒤 당국에 독점적 권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별 재미는 못 봤다. ‘바달로네(바다 괴물)’라 불린 그 배는 처녀 출항에서 50t이나 되는 대리석과 함께 침몰해 버렸다.



 비극을 딛고 특허제도는 나날이 발전했다. 금전적 이익의 보장 없인 발명도, 혁신도 꽃 피울 수 없다는 상식이 굳어졌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돈이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착한 마음도 ‘발명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게 특허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제약 분야에서 특허는 ‘동네북’ 신세다. 사람 목숨이 더 중하지 특허가 대수냐며 대놓고 침해한다. 2002년 정부가 나서 무단으로 에이즈 치료제의 복제약을 만든 태국이 그랬다. 항의가 빗발쳤지만 약값이 월 500달러에서 30달러로 뚝 떨어져 더 많은 생명을 살렸다고 맞섰다.



 특허 침범에 선진국 제약사들은 앓는 소리를 한다. 신약 개발에 돈과 시간을 들인 대가로 특허를 받아 큰 이득을 챙겨 왔으니 말이다. 이들 회사는 특허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값싼 복제약을 시장에 내놓는 업체들까지 얌체로 몰고 있다. 양대 복제약 생산국인 인도·중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과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특허 만료 후 복제약 시판을 늦추는 조치를 고집한 건 그래서다.



 ‘말로 주고 되로 받았다’는 FTA 재협상에서 그나마 이 조치의 유예기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업계가 그 시간에 확실히 체질 개선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발명과 혁신의 DNA는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던데….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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