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55) 유가

중앙일보 2010.12.07 00:01 경제 18면 지면보기



원유값 뚝 떨어졌다고 휘발유값 확 내려가진 않아요, 세금 비중 커서죠





국제 원유값이 또 꿈틀거리고 있다. 연초 한때 배럴당 70달러대 초반을 맴돌더니 어느새 90달러가 머잖아 보인다. 당장 국내 휘발유값이 올랐다. 휘발유 소매가는 L당 연초 1600원대에서 요즘은 1700원대로 상승했다. 하지만 원유값이 오른다고 휘발유값이 같이 올라야 한다는 법은 없다. 반대로 유가가 떨어졌다고 휘발유값이 반드시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원유값이 떨어져도 휘발유값은 오를 수 있다니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국제 유가와 석유제품 가격 동향,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알아본다.



권혁주 기자



수요·공급 원리보다 투기세력에 의해 유가 급등락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연평균 원유 가격은 배럴당 61센트였다. 요즘 화폐가치로 따져 약 14 달러다. 이후 1973년 ‘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나기까지 국제 유가는 큰 변동이 없었다. 60여 년간 원유 가격은 배럴당 1~2 달러를 오갔다. 요즘 시세로 환산해 대략 10~20달러였다.



그러다 73년 1차 석유 파동이 터졌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전쟁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세계가 이스라엘 편을 든 게 화근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은 ‘맛 좀 봐라’고 나섰다. 아랍석유수출국기구(당시에는 석유수출국기구를 뜻하는 OPEC에 아랍을 의미하는 ‘A’가 더 붙어 ‘OAPEC’라고 표기했다)가 원유 감산을 선언하고 가격을 올렸다. 그래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물러서지 않자 이번엔 OAPEC가 25%를 감산하겠다고 하고, 원유 가격도 11.65달러로 인상했다. 74년 1월의 일이었다. 석유 파동 직전 배럴당 3달러 선에서 갑자기 가격이 네 배로 뛰게 된 것이다.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이 손을 들었다. 이스라엘은 점령지 골란 고원에서 퇴각했다. 하지만 한 번 오른 유가는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럴당 15달러 선까지 슬금슬금 올랐다.



79년 세계는 2차 석유 파동을 맞았다. 이번엔 이란 혁명이 도화선이었다. 당시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이었던 이란의 정정이 불안해지자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이듬해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면서 유가는 그야말로 불난 데 기름 부은 양 치솟았다. 2차 석유 파동 전 배럴당 15달러 선에서 40달러 언저리를 기록했다. 2009년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배럴당 110달러에 해당한다.



하지만 1, 2차 석유 파동 때 세계 원유 생산량 감소율은 평년 대비 4~5%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만으로도 값은 최대 네 배로 상승했다. 원유가 경제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너무나 중요한 원자재이기 때문에 조금만 공급에 차질이 생겨도 여파는 엄청났다. 다시 말해 1, 2차 석유 파동은 약간의 수급 불균형이 빚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2차 석유 파동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약 25년간 유가는 안정세를 보였다. 2차 석유 파동이 정점에 달한 1980~81년 국제 유가는 평균 배럴당 36달러 정도였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2001년의 가격은 24달러. 20년간의 화폐 가치 하락을 고려하면 유가는 오히려 하락한 셈이다.



그러다 2005년부터 원유값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145달러를 기록했다. 절대 가격으로도, 또 화폐 가치를 따진 상대 기록으로도 사상 최고치다. 하지만 누구도 이때를 ‘3차 석유 파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공급 부족이 주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경제가 이른바 ‘IT 버블’을 겪었다가 회복한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석유 소비가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급도 함께 늘었다. 수요를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국제 언론들이 ‘로켓처럼 치솟았다(rocketing high)’라고 표현할 정도로 유가가 뛴 것은 투기세력 때문이었다. 유가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투기세력이 원유 선물을 사재기하면서 유가에 거품이 잔뜩 끼었던 것이다.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투기세력 때문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거품은 쉽게 끼지만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하는 법. 2008년 9월 금융위기가 터지자 그해 말 WTI 가격은 31달러까지 떨어졌다. 최고치에 비해 거의 5분의 1토막이 났다. 석유제품 소비는 그해 7월 하루 평균 8541만 배럴에서 12월 8432만8000배럴로 불과 1.3% 줄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향후 경기가 침체해 석유 소비가 더 줄고 가격도 많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한 투기성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거품이 붕괴해 유가는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쳤다.



최근 유가가 슬금슬금 오르는 상황도 수요와 공급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다른 힘에 작용한 측면이 크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서 수요가 늘기는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일어난 뒤 생산을 줄였던 OPEC가 다시 생산을 늘리고 있어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유가가 오르는 것은 ‘돈의 힘’ 때문이다. 미국이 경기를 살리려고 푼 돈(2차 양적 완화)이 원자재 쪽에도 밀려드는 것이다. 달러가 많이 풀려 가치가 떨어질 것에 대비해 원유를 사는 수요도 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질 때 금이나 부동산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점들로 인해 원유값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고 시장에 편승하는 투기세력도 있음은 물론이다.



 원유·휘발유 따로따로 놀아, 휘발유가 더 쌀 때도











원유는 정제 과정이란 것을 거쳐 휘발유·등유·경유·벙커C유 등 각종 석유제품으로 변환된다. 그래서 흔히들 이렇게 생각한다. “휘발유는 원유값에다가 가공비용과 마진을 붙여 파는 것이다”라고. 전혀 틀린 얘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채점을 한다면 오답으로 처리하고 싶다. 그게 아니라 휘발유는 휘발유 자체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값이 결정된다.



예컨대 거대한 정제시설이 망가졌다고 하자. 이건 원유 생산 업체들이 원유를 팔 곳이 줄었다는 소리가 된다. 수요가 줄어드니 당연히 원유 가격이 떨어진다. 하지만 휘발유값은 어떨까. 생산이 감소했으니 뛸 수밖에 없다. 원유 가격이 움직이는 방향과 거꾸로다.



반대로 휘발유가 국제 유가보다 더 쌌던 적도 있다. 2009년 12월 초다. 두바이유는 배럴당 40달러 선이었는데, 휘발유는 35달러 정도를 오갔다. 원유를 사다가 정제를 해서는 밑지고 파는 상황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수요가 급감한 게 제일 큰 원인이었다. 정유사들은 장기 계약한 원유를 계속 들여와 정제를 했다. 그런데 휘발유 수요는 급감했다. 계속 나오는 휘발유를 쌓아 둘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밑지고 팔았다. 유가와는 별 관련 없이 휘발유 자체의 수요와 공급이 이런 상황을 빚어낸 것이다.



경유 같은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휴가를 맞아 이동을 많이 하는 여름철에는 연료인 휘발유값이 경유보다 많이 오르고, 난방을 하는 겨울에는 반대로 난방유인 경유 가격이 강세인 것도 전부 제품별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까닭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환율, 주유소 간 경쟁도 소비자 가격에 영향











휘발유나 경유 같은 석유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갖는 불만이 있다. ‘국제 휘발유값이 오를 땐 정유업체들이 값을 득달같이 올리면서, 내릴 땐 거북이 걸음’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일단 내릴 땐 거북이 걸음이란 것은 맞다. ‘정률제’가 아니라 ‘정액제’인 세금 때문이다. 현재 휘발유에는 L당 약 900원의 세금이 붙는다. 국제 휘발유가가 700원이어서 여기에 세금 900원과 유통 마진 100원을 붙여 1700원에 팔았다고 가정하자. 만일 국제 휘발유 가격이 350원으로 반토막이 됐다면 휘발유값은 어찌 될까. 세금 900원은 물론 그대로이고, 유통 마진도 100원에서 별로 바뀌지 않을 테니 1350원이 될 것이다. 인하율이 20%다. 국제 휘발유 가격 내림세(50%)의 반도 안 된다. 휘발유 세전 가격이 어찌 됐든, 꼬박꼬박 L당 900원가량을 내야 하는 세금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국제 휘발유가가 오를 때는 득달같이 올린다’는 부분은 어떨까. 하도 이런 소리가 많아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증에 나선 적이 있다. 서울대 경제연구소에 의뢰해 국제 원유가 및 휘발유가와 국내 가격과의 관계를 분석하게 하고, 그 결과를 지난해 3월 발표했다. 분석 대상 기간은 1997년 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였다. 결과는 소비자들의 짐작과는 달랐다. 올리는 속도와 내리는 속도 간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리는 속도가 아주 조금 더 빨랐다. 국제 유가와 석유제품 가격, 그리고 휘발유·경유 가격 정보를 전부 투명하게 공개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다. 이런 가격 정보들은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석유정보망(www.petronet.co.kr)이나 유가정보서비스(www.opinet.co.kr)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소비자단체들은 이런 정보를 활용해 혹시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지 않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유사들이 인하에는 인색하고 인상에만 열을 올리기는 어렵다.



이런 현실과는 달리 소비자들이 ‘올릴 때는 번개, 내릴 때는 거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격 인하보다 상승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휘발유·경유의 소비자 가격에는 환율도 영향을 미친다. 원화가 강세이면 가격이 내려간다.



국제 휘발유가와 환율을 제외하고, 석유제품의 최종 판매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또 있다. 바로 ‘경쟁’이다. 이것 역시 공정위가 의뢰한 연구에서 밝혀졌다. 전반적으로 ‘무폴 주유소’의 기름값이 쌌다. 무폴 주유소란 특정 정유사 표시를 하지 않고 기름을 파는 곳이다. 한 정유사를 정해 놓고 기름을 공급받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 제일 싸게 주는 정유사의 것을 받아 판다. 정유사 간 경쟁을 통해 공급가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비자가도 쌀 수밖에 없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무폴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정유사 간판을 달고 파는 주유소보다 L당 평균 62원 저렴했다.



주유소 간 경쟁도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반경 1㎞ 안에 경쟁하는 주유소가 있을 경우엔 가격이 대체로 L당 2.5원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것은 역시 경쟁의 힘이다.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뉴스클립은 시사뉴스를 바탕으로 만드는 지식 창고이자 상식 백과사전입니다. 뉴스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e-메일로 알려주십시오. 뉴스클립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