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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멀어져 간 어느 새터민의 꿈

중앙일보 2010.12.02 00:09 종합 34면 지면보기
“미안했습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북한의 해안포가 연평도를 공격한 지난달 23일 오후 2시34분. 그 시간 새터민 김모(26)씨는 김장을 하고 있었다. 평양 출신인 그는 2002년 탈북해 중국을 떠돌다 2009년 3월 한국에 왔다. 그는 올 3월 결혼해 남북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강원도 철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김장을 끝내고 인터넷으로 북한 포격 사실을 알았다는 그는 서정우 병장 등 전사자와 부상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눈물도 났다. 북한 출신인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서다.



 김씨는 우선 안타깝다고 했다. 굶어죽는 이가 수만, 수십만인데 아직도 북한이 미친 짓만 해서다. 북한의 가족 걱정이 컸다. 연평도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과 불쌍한 북한 주민들에게 옮아갈 게 뻔해서다.



 김씨는 (북한 공격에) 강력 대응하지 못한 정부에 대해 화가 난다고 했다. 연평도 앞 북한의 군사시설은 대부분 주민들이 사는 마을과 많이 떨어져 있어 군사시설을 직접 공격해도 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가 강력 대응하지 못한 대가는 또 다른 미친 공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확신이다. 정상적인 시각으로 북한을 보는 것 자체가 가장 비정상적이라는 걸 그는 몸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정부에 권한다. 북한과 대화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거라고. 강력 대응하면 전면전으로 확산될 거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그는 이렇게 진단했다.



 “남북 전쟁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가깝게는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문제고 동시에 유엔의 문제 아닙니까? 당연히 국제공조로 전면전은 차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씨는 북한은 유일하게 사회주의를 지킨다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백성을 힘들게 하는 나라라며 가능한 한 빨리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집단이라고 못 박았다. 그래서 북한이 도발하면 철저하게 응징해 도발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는 “전쟁처럼 악하고 소름 끼치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우리가 전쟁을 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화를 보장받을까. 조지 워싱턴은 말했다.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김씨는 요즘 우울하다고 했다. 자신의 꿈이 자꾸만 멀어져만 가서다. 중국을 전전할 당시 그는 5분 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주일을 한 평도 안 되는 방에 틀어 박혀 있기도 했고 밤에 수십㎞ 산길을 걷기도 했다. 이때 자신을 지탱해 준 게 그의 ‘꿈’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안착해 그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한국사회에 더 빨리 적응하도록 돕는 ‘사회복지사’ 꿈이다. 그러나 요 며칠 그는 우울하다. 북한의 미친 짓이 계속되고 한국의 대응방식이 너무나 순진(?)해 살아생전 통일을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다시 말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하세요.”



이찬호 중부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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